“누님, 사업상 급히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틀 후에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2014년 8월 서울 성동구치소 접견실. 수감자 박모(57)씨는 면회 온 누나(61)에게 자기 딸이 결혼하는 것처럼 꾸며 법원에 구속집행 정지 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는 그해 4월 서울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박씨는 한 달 내내 졸랐고, 누나는 동생의 간곡한 부탁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누나는 2014년 9월 대구 서문시장 인쇄골목을 찾아 결혼식장 계약서를 만들었다. 대구 한 예식장의 계약서를 구해 결혼날짜를 ‘2014년10월3일 오후 4시’라고 적었다. 신부 혼주란엔 동생 박씨의 이름을, 신부란에 조카(박씨의 딸) 이름을 적었다. 누나는 250만원을 주고 새로 선임한 변호사에게 결혼식장계약서, 청첩장, 웨딩사진 등을 보냈다. 누나는 변호사에게 여러 차례 전화해, 구속집행 정지 신청을 독려했다. 변호사는 그해 9월 29일 “박씨가 딸 결혼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성남지원에 구속집행 정지 신청을 냈다. 박씨도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판사는 2014년 10월 2일 오후 3시부터 이틀간의 구속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성동구치소에서 나온 박씨는 그대로 도주했다. 누나는 동생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구속기소돼 박씨 대신 성동구치소에 갇혔다. 1심을 맡은 성남지원은 그해 12월 “일반인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수법으로 동생의 도주를 도와 엄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서울과 대구 등을 옮겨다니며 도피 생활을 했고,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박씨는 작년 3월 29일 대구 수성구의 목욕탕에서 나오다 경찰에 검거됐고, 곧바로 대구구치소에 갇혔다. 성남지원에 있던 박씨 사건은 대구지법으로 이송됐다. 당시 대구지검에서 박씨의 사기 혐의에 대한 수사가 별도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4월 수원지법은 박씨 누나 사건의 2심에서, “건강이 좋지 않고, 동생이 최근 붙잡힌 점을 고려했다”며 징역 1년6개월로 감형했다. 이 판결은 두 달 뒤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대구지법 형사8단독 이상오 부장판사는 이달 19일 박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했는데, 이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필로폰 2차례 투약, 1억7500만원 상당의 사기, 결혼식장계약서 등 사문서 위조 및 위조사문서 행사,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 업무를 방해한 위계공무집행 방해, 도주 등 혐의 모두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 부장판사는 “마약 범죄로 여러 차례 처벌받았는데도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고, 사기 피해 금액이 많은데다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범행으로 도주했고, 국가 사법기관의 업무를 방해해 공권력이 낭비되게 한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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