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이혼·상속판결

헤어진 후 임신을 알았다…아이에게 엄마 성 물려주려면?

학운 2021. 12. 1. 17:03

30대 여성 A씨는 최근 6년간 교제한 B씨와 헤어졌습니다. 이별 한 달 후 A씨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요. A씨는 아이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나 B씨와도 재결합할 생각이 없었는데요. B씨에게는 임신 사실을 알린 뒤 "아이는 혼자 낳아 키우겠다"는 의사를 전했습니다.

A씨는 태어날 아이에게 당연히 자신의 성을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B씨 가족들은 득달같이 연락해 "애는 둘이 만들었는데 왜 여자 성을 붙이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A씨는 자신이 혼자 낳아 혼자 기를 아이의 이름을 짓는 데에 어째서 B씨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혼인신고 없이 아이를 낳았다면 아이 엄마가 출생신고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경우 아빠를 알 수 없는 상태에 해당해 엄마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합니다.

A씨와 B씨처럼 남이 아니라 혼인신고를 마친 정식 부부라도 모(母)의 성을 따를 수 있습니다. 지난해 법무부 법제개선위원회는 태어난 자녀의 성은 아빠의 것을 따른다는 내용의 민법을 개정해 자녀의 성은 부모의 협의로 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론 아빠 성을 따르지만 부모가 혼인신고 시 협의했을 때는 엄마 성을 붙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협의 시기가 아이 출생 후가 아닌 혼인신고 당시라는 게 문제로 지적돼왔습니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고 심지어 자녀 계획도 아직 없는 신혼부부에게 혼인신고 자리에서 아이에게 누구의 성을 물려줄지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토의하라고 하는 셈이죠. 설령 부부가 합의 하에 엄마 성을 물려주기로 하고 혼인신고서에 이를 명시해도 '미래의 자녀가 엄마 성을 따르기로 협의했다'는 별도의 협의서까지 써야 합니다.

이 때문에 혼인신고 시에는 일단 아버지의 성을 따르기로 했다가 추후 아이의 성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더욱 절차가 복잡합니다. 법원에 가서 ‘자녀의 성·본 변경’ 신고를 하고 재판을 거쳐야 하는데, △외국인인 경우 △부를 알 수 없는 경우 △혼인 외 출생자인 경우 △이혼·재혼을 통해 가족 형태가 달라진 경우 등 제한된 사유 하에서만 허가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A씨와 같은 미혼모가 필요에 의해 아버지를 인지하게 되면 저절로 성이 바뀐다는 맹점도 있습니다. 인지란 혼인 외 출생자에 대해 그가 자신의 친생자임을 인정하는 신분행위인데요. 인지에는 아버지가 스스로의 의사로 인지신고를 하는 임의인지와 부모의 의사와 무관하게 법원의 재판을 통해 인지효력을 발생시키는 재판상 인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방식을 통해 인지를 했건, 법적인 부(父)가 확인되면 민법상 부성주의 원칙에 따라 자동으로 아이의 성이 친부의 성을 따라 바뀝니다. 물론 부의 사전 동의가 있으면 원래 사용하던 엄마 성을 그대로 쓸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다가 성이 바뀐 후에야 뒤늦게 법원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많은 이들이 출산 후 아이를 키워온 미혼모에게 이런 제도가 매우 불합리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혼인신고 아닌 출생신고 당시 부모 합의 하에 성을 정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혼외자 인지 과정에서 아이가 종전의 성을 계속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는데요.

지난 4월 여성가족부는 이를 반영해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 협의 하에 성을 정할 수 있도록 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확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밖에도 지난해 8월 부성주의 원칙을 아예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이 발의됐고, 같은해 10월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비슷한 내용을 담은 ‘차별 없이 성·본 쓰기 2법’을 발의했으나 아직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A씨는 B씨의 도움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를 계획입니다. 만약 출산 후 B씨 스스로 인지신고 하거나 경제적 궁핍 등의 문제로 인지청구의 소를 통해 아이를 인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지 후 아이는 태어난 때로 소급해 친부와 친자관계가 형성됩니다. 부모로부터 부양받을 권리는 물론 상속권을 가집니다. A씨 또한 B씨에게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게 됩니다. A씨가 아이를 낳기 전 "양육비를 안 줘도 된다"고 미리 말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 모두는 미성년자 자녀를 부양할 의무를 집니다. 양 당사자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기를지 협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협의가 영구적인 건 아닌데요.

양육자의 갑작스러운 경제적 어려움 등 사정변경이 있는 때에는 법원은 양육자의 청구에 의해 그 협정을 취소 또는 변경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978조) 그 과정에서 각서를 작성하고 공증을 받은 경우에도 변경된 사정이 합당하다면 청구가 인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법원 1991. 6. 25. 선고 90므699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