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이혼·상속판결

시어머니…남편 사별 뒤에도 모셔야 하나요?

학운 2021. 12. 1. 17:31

A씨는 최근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A씨는 결혼 생활 내내 가부장적인 남편과 시어머니 B씨의 모진 시집살이에 시달렸는데요. B씨는 A씨에게 시댁 식구의 온갖 뒤치다꺼리를 시켰고 남편은 이를 당연히 여겼습니다.

A씨는 이제 남편도 없고 자녀들도 장성했으니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운영하던 가게를 팔고 친정어머니와 집을 합칠 생각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B씨는 "내가 내 아들 집을 놔두고 어딜 가냐. 이 X이 서방 죽더니 미쳐서 날뛴다"며 불같이 화를 냅니다.

B씨에게는 사망한 A씨 남편 외에 3명의 자식이 더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엄마 모실 상황이 아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사시겠냐"며 A씨에게 B씨 부양을 떠넘기는 상황입니다. 20년 넘도록 이어진 시집살이에 지칠대로 지친 A씨, 시댁 식구들에게 "그럼 집은 안 팔테니 어머니 여기서 혼자 사시면 되겠다"고 전했더니 자식 도리를 못 한다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A씨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어머니와 같이 살았다면 모셔야

부양의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1차 부양의무란 부모가 미성년인 자녀를 부양해야 할 의무와 부부간 부양의무를 말합니다. 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나 부모가 성인인 자녀를 부양해야 할 의무는 2차 부양의무에 속합니다.

민법은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배우자)인 경우에 한해 2차 부양책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이란 현실적으로 생계를 같이 하는 가족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주민등록상 세대가 같을 필요는 없지만 일상생활에서 동일한 생활자금으로 생활하는 단위를 뜻합니다. (대법원 1989. 5. 23. 선고 88누3826 판결)

즉 남편이 살아있을 때까진 A씨에게 시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당연히 존재합니다. 현재는 남편이 사망한 상탠데요. 이처럼 부부 중 한쪽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망한 이의 부모와 배우자 사이 부양의무는 어떻게 바뀔까요?

판례는 사망으로 인해 배우자 관계가 소멸하므로 동거하는 경우에 한해서 부양의무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남편 사망과 동시에 남편의 혈족인 시어머니와는 민법상 인척이 되므로 기존에 시부모와 별거를 했다면 부양의무를 지지 않습니다. (대법원 2013. 8. 30. 자 선고 2013스96 결정)

B씨와 20년 이상 살아온 이상 A씨에겐 부양의무가 인정됩니다. 다만 A씨가 재혼을 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재혼 시에는 이전 배우자 혈족과의 인척 관계가 종료되고 말 그대로 완전히 남남이 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은 뭐하고" 부양책임 나누려면

A씨에게 B씨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B씨의 노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1차 부양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경제적으로 힘들더라도 피부양자의 생활 수준을 자신과 비슷한 정도로 맞춰야 합니다. 이와 달리 부모를 모시는 2차 부양은 부양의무자가 생활에 여유가 있음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피부양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해 인정됩니다.

부양의 방식이나 부양료의 구체적 액수는 당사자 협의로 정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A씨 사례처럼 협의가 어려울 때는 부양권리자가 재판을 청구해 부양료에 대한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B씨 홀로 생계 유지가 가능한 정도로 재산이 많거나 A씨에게 B씨를 부양할 여유가 없음이 밝혀지면 청구가 기각되기도 합니다.

아울러 △부양의무자와 권리자가 지금껏 어떤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 △부양권리자가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없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부양의무자의 태도는 어떠한지 등을 먼저 따져보게 됩니다. 만일 부양권리자가 친족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했거나, 그간 재산을 낭비해 요부양상태에 이르렀음이 증명될 경우 부양의무도 옅어질 수 있습니다.

A씨 입장에선 남편이 사망한 상황에서 다른 형제들이 아닌 전 며느리인 자신이 왜 시어머니를 모셔야 하는지 의문이 들 텐데요. 이처럼 여러 명의 자녀 중 한쪽만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에 충실한 경우 형제들을 상대로 부양료 반환을 청구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요양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병원비 약 1500만원을 부담한 첫째가 둘째에게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법원은 사정을 인정해 둘째로 하여금 첫째에게 400만원의 부양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부양의무자가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면 소송을 걸어도 부양료를 받기 힘듭니다. 나아가 형제들에게 동시에 부양의무가 인정되더라도 연령이나 재산 상황 등 다양한 제반 사정에 따라 부양료는 각기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