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집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B씨에게서 "김밥 35줄 포장해달라"는 예약 전화를 받았습니다. A씨는 주문대로 음식을 준비했지만 약속 당일 B씨가 나타나지 않아 A씨에겐 35줄의 김밥과 마음의 상처만 남게 됐습니다. A씨는 지역 중고거래 어플을 통해 한 줄에 3500원짜리 김밥을 2000원에 판매했습니다.
B씨의 행동은 이른바 '노쇼'에 해당하는데요.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이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노쇼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액은 연간 8조 원에 이를 정도로 그 피해가 극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식당 방문 예약도 일종의 계약입니다. 우리나라 민법은 계약의 주요 내용에 관한 합의만 있어도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봅니다. 예약 시 방문 일자와 인원수 등의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식당 주인과 고객 사이 음식 제공 계약이 체결되는 셈입니다. 계약은 고객이 임의로 해지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식당 예약 자체를 취소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노쇼는 고객이 예약을 취소한다는 내용을 고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식당에 찾지 않는다는 게 쟁점입니다. 식당 주인 입장에선 고객의 계약 해지 의사를 전혀 모르고 있다가 예약 시간에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비로소 계약이 묵시적으로 해지됐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판례는 일방 당사자가 신의칙에 반해 이유 없이 계약을 파기한 경우, 상대방 측에서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된다고 믿고 지출한 '신뢰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계약 성립을 기대하고 지출한 계약준비비용처럼 해당 계약이 없었더라면 지출할 일도 없는 돈 등이 포함됩니다.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1다53059 판결)
아직 노쇼 고객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국내 사례는 없으나, 위 판례 내용에 비춰보면 고객의 노쇼 또한 부당한 계약 파기에 해당하기에 식당 주인은 고객에게 민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손해배상액의 산정이 무척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식당 주인 입장에선 크게 이미 구매한 식재료 비용과 노쇼를 당함으로써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 것에 따른 부가적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텐데요.
식재료 비용의 경우 노쇼 고객의 주문 음식에 해당 재료를 모두 사용한 게 아니라면 손해배상액을 얼마로 책정해야 할지가 애매합니다. A씨처럼 노쇼 고객에게 팔지 못하게 된 조리완료 음식을 다른 고객에게 대신 팔았다면 더욱 그렇죠.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고객이 예약 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해서 제3의 손님이 찾아왔을 거라는 보장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노쇼에 대해 실제 소송까지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자영업자들은 소송 비용이 손해액보다 훨씬 크고 승소 확률도 낮다 보니 노쇼 고객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적 장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 따르면 식당 등을 예약한 고객이 예약시간 1시간 이내로 앞두고 취소하거나, 취소 없이 식당에 나타나지 않으면 예약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식당 예약시 예약금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을 받습니다.
처음부터 식당 방문 의사가 없으면서 예약해놓고 일부러 가지 않으면 업무방해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형법에 따르면 위계 또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노쇼 문제를 근절하려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예약은 일종의 계약이고, 이를 지킬 수 없다면 미리 연락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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