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차 번호판 위조하면 '공기호위조죄'?

학운 2017. 3. 30. 21:12

형법 조문을 보면 범행의 '목적'이 있어야 범죄 행위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죄목들이 존재한다. 이런 유형의 범죄는 목적이 없으면 행위를 했더라도 처벌되지 않는 만큼, '목적'의 판단이 중요하다.

 

형법상 '공기호(公記號)위조죄'도 목적이 있어야 처벌되는 범죄 유형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이 공기호위조죄의 목적인 '행사의 목적'이 어떤 의미인지를 판단한 판례(2015도1413)가 있어 소개한다.

 

A씨는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며, 고장 난 차량을 수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B씨로부터 크레인 화물차량의 수리를 의뢰받게 된 A씨는, 견인차량을 이용해 B씨의 화물차량을 견인해오던 중 화물차량의 번호판을 분실했다.

 

A씨는 B씨에게 번호판을 분실했다는 사정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고민하던 B씨는 자신의 화물차량이 현재 프레임이 부러져 장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지만, 고정된 장소에서 크레인 용도로는 사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B씨는 부서진 프레임 부분의 수리를 포기하는 대신 화물차량을 지게차 대용으로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창고에서 화물차량을 지게차 대용으로 고정해놓고 쓴다 하더라도 번호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B씨는 A씨에게 번호판을 찾아 다시 부착해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B씨의 요구에 번호판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공업사 내에 보관 중이던 다른 차량 번호판을 떼어 내 B씨의 화물차량 뒷부분에 부착했다. A씨는 화물차량용 번호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그 번호판에 흰색 페인트칠을 한 다음, 검은색 페인트로 색을 입혔다.

 

A씨가 부착한 번호판은 자세히 살펴보면 페인트칠을 한 티가 났지만, 일반 사람들이 얼핏 보기에는 실제 자동차등록번호판과 모양, 크기, 글자의 배열 등이 유사해 진짜 번호판으로 착각할 수준이었다.

 

검찰은 A씨를 자동차등록번호판을 위조한 혐의로 형법상 공기호위조죄로 그를 기소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A씨에게 자동차등록번호판을 위조해 '행사할 목적'이 있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형법 제238조 제1항은 행사할 목적으로 공무원이나 공무소의 기호를 위조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A씨를 공기호위조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A씨에게 위조한 공기호를 '행사할 목적'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A씨에게 위조한 자동차등록번호판을 행사할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형법 제238조 제1항에 의하면, 행사할 목적으로 공기호인 자동차등록번호판을 위조한 경우에 공기호위조죄가 성립한다"며 "여기서 ‘행사할 목적’이란 위조한 자동차등록번호판을 마치 진짜 번호판인 것처럼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할 목적을 말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위조한 번호판을 그 용법에 따라 사용할 목적'의 의미에 대해 재판부는 "위조한 자동차등록번호판을 자동차에 부착해 운행함으로써 일반인들이 볼 때 가짜 번호판을 붙인 자동차를 그 번호의 차량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재판부는 "A씨는 위조한 자동차등록번호판을 B씨의 화물차량에 부착해 B씨가 차량을 운행할 때 번호판이 없어 발생할지 모르는 문제를 사전 예방하려고 했다"고 보아 A씨에게 행사 목적 공기호위조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A씨는 형사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

 

 

◇ 판례 팁 = 자동차등록번호판은 공무소에서 만드는 식별 기호라는 점에서 '공기호'에 해당한다. 따라서 차량 번호판을 위조해 그것이 일반 사람들이 볼 때 그 번호를 가진 차량이라고 오해하게 만든다면, 그 위조가 다소 정교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공기호를 위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다.

 

 

◇ 관련 조항

- 형법

제238조(공인 등의 위조, 부정사용)

① 행사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인장, 서명, 기명 또는 기호를 위조 또는 부정사용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