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 판결 후…첫 무죄는 ‘예비군훈련 거부’

학운 2018. 11. 19. 23:25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하급심 법원에서 처음으로 나온 무죄 판결은 ‘예비군훈련 거부자’ 사건이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명확히 판단하지 않았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현역 입영 거부와 마찬가지로 예비군훈련 거부도 허용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3단독 송영환 부장판사는 예비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ㄱ씨는 현역으로 입영해 4주간 군사훈련을 받고 방위산업체에서 군복무를 했다. 전역한 뒤 예비군훈련도 4년차까지 마쳤다.

그러나 ㄱ씨는 2014년 신앙공동체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사람을 죽이거나 죽이는 것을 연습하는 것에 반대하는 양심을 갖게 됐다. 그때부터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을 것이다’라는 성경 구절에 근거해 예비군훈련을 거부했다. ㄱ씨는 군과 무관하고 국방부의 감시하에 있지 않은 민간영역에서의 대체예비군 복무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수행할 의지가 있다고 했지만, 검찰은 ㄱ씨를 기소했다.

문제는 헌재가 지난 6월28일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도 대체예비군제를 규정하지 않은 향토예비군법에 대해선 별다른 판단을 하지 않은 점이다. 대법원도 지난 1일 현역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도, 함께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던 예비군훈련 거부자 사건은 결론내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여러 해석이 나왔다. 예비군훈련 거부도 양심에 따른 결정이므로 형사처벌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예비군훈련 거부는 소위 ‘변경된 양심’이기 때문에 달리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송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에서 예비군 거부를 현역 입영 거부와 다르게 볼 이유가 없다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현행 예비군법에는 비군사 부문에서 예비군훈련 의무를 이행하는 대체복무제가 병역종류로 규정돼 있지 않다”며 “병역법 규정에 대한 헌재 결정은 예비군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또 “군사 부문에서의 예비군훈련 의무의 이행을 거부하고 대체복무제를 이행할 의사를 표시한 ㄱ씨의 양심의 자유는 예비군법에 대체복무제를 예비군훈련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아 부당하게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송 부장판사는 또 “국민이 부담해야 할 국방의 의무는 구체적으로 군사 부문만이 아니라 비군사 부문에서의 안보 위기에 대응하는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한 의무의 이행을 포함한다”며 “비상사태하에서 예비군을 동원하는 경우에도 군사 부문에서 군사적 역무만이 아니라 현재 대체복무제의 분야로 거론되고 있는 교정, 소방 등 비군사 부문에서 비군사적 역무의 수행도 비상사태의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송 부장판사는 “예비군법에서 예비군의 임무로 적시된 민방위 업무의 지원도 비군사 부문에서 비군사적 역무를 하는 형태로 수행할 수 있다”며 “따라서 대체복무제 내지 예비군 제도는 예비군훈련 의무의 면제와 특혜가 아니라 이행할 수 있는 예비군훈련 의무의 종류 중 하나”라고 했다.

한편 송 부장판사는 “ㄱ씨가 양심에 따라 소집을 거부했다는 것은 ㄱ씨의 ‘양심을 이유로 한’ 소집 거부를 의미하지, 입영거부가 ‘도덕적이다’라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일각에서 “군대 간 나는 그럼 비양심적이냐?”고 오해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국방부는 예비군도 대체복무 신청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체복무 심사기구를 국방부 산하에 두고, 대체복무 기간을 현역 육군의 2배인 36개월로 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