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장에 그래픽카드 중고 매물이 대거 쏟아지고 있다. 오늘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인터넷 중고상품 거래 커뮤니티 ‘중고나라’에 올라온 그래픽카드 판매 글만도 100개를 헤아릴 정도다. 불과 1개월 전 같은 날 동일한 시간대엔 판매 글이 10여개 정도밖에 없던 것에 비해 훌쩍 늘어난 수치다.
마침 게임하기 좋은 방학 시즌이니, 이 기회에 성능 좋은 그래픽카드 하나 싸게 챙겨볼까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하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시장에 대량으로 풀린 그래픽카드는, 암호화폐 채굴에 동원된 물품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꽤 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와 그래픽카드가 무슨 관계냐면
이더리움(Ethereum)이나 비트코인(Bitcoin) 등 암호화폐는 수학문제로 된 암호를 풀고 그 보상으로 화폐를 받는 구조다. 쉽게 말하자면, 수학 문제를 풀면 열리는 금고를 무더기로 쌓아 두고, 사람들이 문제풀이에 참여해 돈을 버는 식이다. 이론적으론 사람 손만으로도 문제를 풀어낼 수 있다지만, 대개 효율 때문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쓴다. 이렇게 문제를 풀어 코인을 얻는 과정을 ‘채굴’(mining)이라 한다.
당연히 컴퓨터 성능이 좋을수록 채굴에 유리하며, 컴퓨터 부품 중 암호화폐가 요구하는 연산 능력에 가장 많이 관여하는 게 바로 ‘그래픽카드’다. 이 때문에 암호화폐 채굴꾼들은 그래픽카드 여러 대를 하나로 연결해 성능을 한껏 높이는 방식을 즐겨 쓴다.
지난 5월 1일 일본이 ‘개정 자금결제법’을 시행하며 비트코인을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아시아 국가 중 통화 안전성이 가장 높은 일본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도입하자, 이를 기점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11일엔 비트코인 가격이 1비트코인당 3000달러(약 341만원) 선을 돌파했다. 지난달 1일 1비트코인당 1354달러(약 154만원)였던 게 불과 한 달 반 사이 두배 이상 뛴 것이다. 자연히 채굴에 뛰어드는 사람이 대폭 늘었고, 그래픽카드 수요도 폭발했다. 당시 일부 그래픽카드는 품귀 현상을 겪기까지 했다.
하지만 지난 26일 비트코인 값이 1비트코인당 2255달러(약 256만원)로 떨어지고, 같은 날 이더리움도 하루 만에 가격이 26% 하락하며 221.45달러를 기록하는 등 암호화폐 가치가 크게 흔들렸다. 거기에 같은 날 한승희 국세청장 후보자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비트코인에 양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치명타를 먹였다.
고급 그래픽카드는 개당 소비전력이 냉장고 3~4대에 맞먹는다. 그런 물건을 온종일 수십~수백개 돌리면 누진세까지 얹혀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된다. 즉 암호화폐 수익성이 매우 뛰어나지 않는 이상, 그래픽카드를 다량 쏟아붓는 채굴 전략은 별 의미가 없다. 이 때문에 예전보다 암호화폐 가치가 크게 올랐음에도, 수익성이 꺾이자마자 손 털고 나오려는 사람이 줄을 잇게 된 것이다.
#암호화폐 채굴에 쓴 게 뭐가 문제지
그렇다면 암호화폐 채굴에 쓴 그래픽카드 구입에 신중을 기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혹사 문제’ 때문이다.
그래픽카드는 사람이 아닌지라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는다. 그러니 전기가 충분하고 수익성이 보장되기만 한다면 24시간 돌리는 게 유리하며, 실제로 대부분 채굴업자가 그 전략을 쓴다.
하지만 채굴을 위해 하루 내내 복잡한 연산을 수행하면 발열이 심해지고, 그 결과 성능저하와 수명단축이 쉽게 온다. 비슷한 기간 동안 쓴 물품이라도, 일반 가정집에서 길어야 하루에 4~6시간 게임 돌리던 그래픽카드와 상태가 같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각종 컴퓨터 관련 커뮤니티에서 지금은 웬만하면 그래픽카드를 사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사야겠지만
물론 거칠게 쓴 물건이 항상 먼저 망가지는 건 아니듯, 심하게 굴린 그래픽카드라 해서 무조건 성능이 떨어진다 단정 지을 순 없다. 하지만 사람도 비슷한 신체조건이면 고생을 더 한 사람이 보다 앓기 쉽듯, 그래픽카드 역시 고초가 심했던 물품일수록 성능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꼭 지금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며 신품을 살 돈이 넉넉지 않다면 지금 중고품을 사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한 템포 쉬고 다음 기회를 노리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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