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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830억대 혈액 사업 추진하면서 특정 업체 밀어줬다

학운 2017. 4. 23. 22:29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가 지난해 830억원 규모의 혈액 사업을 추진하면서 특정 업체에게 특혜에 가까운 혜택을 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내용은 시사저널이 단독 입수한 보건복지부 특별감사 결과 보고서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감사보고서는 A4 10장 분량으로, 올해 3월 복지부 감사담당관실 명의로 작성됐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적십자는 2016년 1월 면역혈청검사장비 일원화 추진 사업 계획을 마련했다. 면역혈청검사장비는 B형 간염(HBV)과 C형 간염(HCV) 에이즈(HIV) 등 헌혈 받은 혈액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1차적으로 검사하는 장비다. 그 동안 적십자는 A사와 Q사의 장비를 도입해 같이 사용해 왔다. 하지만 장비 노후율이 커지면서 검사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지자 일원화를 추진했다.

 

ⓒ 시사저널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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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입찰서 수의계약 선회 배경 주목

 

장비 교체를 위해 책정된 예산은 2016년 한해에만 276억원이다. 적십자는 장비 및 시약의 5년 일괄 계약을 추진할 예정이었던 만큼 전체 예산은 832억원에 이른다. 당시 적십자가 작성한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2016년 1~2월 중 혈액장비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시스템 사양 및 규격을 결정한 뒤, 3~4월 중 공개․경쟁 입찰을 실시할 예정이었다. 적십자는 필요한 조건만 충족하면 입찰 대상에 대한 제한을 두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계획대로라면 4~6월 중 3개 혈액검사센터의 장비가 모두 새 제품으로 교체돼야 정상이었다.

 

문제는 적십자가 1월 말 장비심의 실무위원회에서 2개 업체를 임의로 선정해 자사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감사보고서에서 “이 시기는 업체제안요청서의 초안도 작성하기 전”이라며 “적십자는 S사와 A사의 장비를 평가용 장비로 정하고 설치 일정은 향후 업체와 논의하기로 정했다”고 지적했다. 수백억 원대 사업을 진행하면서 두 개 업체에게만 혜택을 준 것이다.

 

장비 교체 사업을 진행하면서 ‘밀실 협의’를 한 정황도 나왔다. 적십자 내규에 따르면 각종 정책이나 계획을 수립할 때는 기획조정실이나 재무관리실과 사전에 협의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실무부서는 다른 부서와 공식적인 협의나 조정, 서면 의견교환조차 없었다. 감사보고서는 “재무관리실 구매팀장이 사업과 관련해 장비심의위원회에 한 번 참석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때는 사업계획서가 작성된 이후였고, 그나마 참고인 자격이어서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내부적인 논의를 거치지 않은 부작용은 컸다. 각종 민원으로 3차례나 입찰 규격이 변경되면서 사업 일정이 크게 지연됐다. 업체제안요청서 작성을 4월에 완료하고도, 구매입찰 사전 규격공개는 6월에 시행됐다. 혈액의 원활한 수급을 위해 시급히 시행돼야 할 사업이 전체적으로 2~8개월 정도 지연됐다.

 

외부 전문가의 참여도 거의 없었다. 혈액 검사라는 사업 특성상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직원만으로 위원회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적십자는 내부 직원만으로 구성된 TF나 실무위원회를 통해 사업을 진행해 왔다. 보고서는 “외부 전문가 참여는 2016년 2월과 3월 각각 열린 제1차 시약평가위원회와 혈액장비심의원회 등 두 차례뿐이다. 전체 위원회 멤버 11명 중 외부 전문가는 1명이나 2명에 불과했다”며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혈액관리를 위한 핵심 검사장비 도입 사업을 진행하면서 외부 전문가를 배제한 것은 객관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적십자는 지난해 9월 우여곡절 끝에 조달청 나라장터를 통해 입창공고를 냈다. 하지만 S사만 참여하면서 입찰은 4차례나 유찰됐다. 결국 적십자는 11월 말 수의시담공고를 냈다. 수의시담은 수의계약 전에 입찰 담당자와 계약 당사자가 만나 가격협상을 벌이는 과정이다.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주목되는 사실은 한 번도 입찰에 참여한 적이 없는 A사가 수의시담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됐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2번 이상 유찰된 조달 입찰의 경우 최종 입찰에 참가한 업체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하는 게 통상적”이라며 “한 번 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A사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적십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A사를 밀어주기 위한 적십자의 꼼수가 아니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적십자는 2016년 5월 이미 A사의 평가용 장비를 혈액관리본부 내에 설치했다. 이때는 아직 입찰 공고가 나가기 전이었다. 심지어 업체제안요청서가 공개되기 전에 이미 평가용 장비를 들여오면서 내부적으로도 뒷말이 많았다. 결국 복지부가 나섰다. 복지부는 올해 2월6일부터 10일까지 적십자에 대한 특별 감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적십자의 파행이 드러난 것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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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비 29대 중 26대 노후율 140% 넘어

 

사업 지연과 복지부 특별감사로 검사장비 일원화 사업은 현재 ‘올 스톱’된 상태다. 적십자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2006년부터 도입된 면역혈청검사장비 29대 중 26대의 노후율이 140%를 넘는다. 노후율이 150%를 넘는 장비 2대는 지난해 폐기된 것으로 안다”며 “헌혈 혈액의 이상 유무를 검사하는 장비 교체 사업이 지연되면서 혈액 공급의 지연 역시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3월 말 기관경고 2건(사전규격공개 전 특정업체 평가용 장비 반입 부적정 등)과 기관주의 및 개선 1건(장비일원화 추진사업 지연), 개선 1건(외부전문가 참여 부족)을 골자로 한 특별감사 결과 처분통지서를 적십자 측에 발송했다. 하지만 적십자 주변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 측은 “복지부 감사에서 일부 문제가 지적됐지만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면역검사시스템은 장비 설치 및 평가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런 사업 특성을 고려해 공개경쟁 입찰 시행 전에 평가용 장비를 반영했을 뿐이다. 성능 평가에 영향을 미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부 전문가 참여가 미미했다는 지적이나 사업 지연 등에 대해서도 적십자 측은 “혈액 검사 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앞서 관계자는 “계약 업무와 관련해 충분히 법률 자문을 받았고, 질병관리본부 및 수혈학회 소속 전문의로 구성된 전문가 위원회도 개최해 의견을 수렴했다”며 “복지부 감사에서 지적된 문제를 보완해 계속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