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김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직장인 정모(38)씨. 그는 2년 전만 해도 서울 마포의 아파트에 살았다. 하지만 전셋값 인상을 견디지 못하고 서울을 탈출했다. 이후 정씨의 삶은 지옥으로 변했다. 그는 하루 3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다. 오전 6시 30분쯤 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10여 분, 다시 버스를 타고 회사가 있는 서울 광화문까지 1시간 10분 남짓을 달린다. 버스에서 내리면 구겨진 몸으로 다시 일터까지 10분 넘게 걸어야 한다. 정씨는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면 몸에 진이 쭉 빠지기 일쑤”라며 “경기도로 이사 간 뒤에는 시내 저녁 약속도 부담스러워 잘 잡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 사는 상당수 직장인의 고단한 일상이다. 일하는 시간은 세계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출·퇴근길은 전쟁터를 방불한다. 서울에 직장과 학교가 있어 정씨처럼 장거리 통근·통학을 하는 서울 바깥 지역 사람이 1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수도권 사는 4명 중 1명은 집과 회사·학교를 오가는 시간이 2시간이 넘었다.
◇타지→서울 출·퇴근 132만명…4명 중 1명 ‘왕복 2시간’
통계청이 19일 공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를 보면 2015년 11월 기준 서울·수도권으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총 1442만 4000명으로, 국내 전체 통근·통학 인구(만 12세 이상 2849만 9000명)의 50.6%를 차지했다.
이 중 다른 시·도에 살면서 매일 서울로 출근·통학하는 직장인과 학생은 150만 명에 달했다. 5년 전 조사 때(145만 8000명)보다 4만 명 이상 늘었다. 경기도 거주자가 127만 7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인천 19만 1000명, 수도권 외 지역도 3만 2000명에 달했다. 직장인만 추려보면 이런 원거리 출·퇴근족(族)은 132만 3000명이었다.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시·군·구 기준)은 경기 고양시였다. 16만 9000명이다. 경기 성남시가 14만 4000명으로 그다음으로 많았다. 경기 부천시(12만 2000명), 남양주시(10만 7000명), 용인시(9만 명) 등이 뒤를 이었다. 경기 지역 내 일산·분당·별내신도시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베드타운에서 밤에 눈만 붙이고 출근길에 오르는 이들이다.
서울·수도권 거주자의 출근 및 등교 시간은 평균 37.7분으로 5년 전보다 2.3분 늘었다. 회사에 가는 통근이 38.5분, 등교가 34.6분이었다. 이재원 통계청 인구총조사과장은 “출근 시간은 퇴근 시간보다 짧은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고려하면 직장과 학교를 오가는데 하루에 평균적으로 1시간 15분 이상을 쓴다는 얘기다.
출·퇴근과 등·하교에 2시간(편도 기준 60분 이상) 넘게 걸리는 서울·수도권 인구도 26.9%에 이른다. 4명 중 1명꼴로 길에서 2시간 이상을 보내는 것이다.
◇서울 등진 사람 5년새 57만명…대선후보도 ‘교통 개선’ 한목소리
먼 거리 출·퇴근자와 학생이 많아진 것은 기본적으로 서울의 비싼 집값 때문이다. 직장과 학교가 서울에 있지만, 주거비 부담에 경기도나 인천 등으로 이사한 가족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지난 5년 새 서울을 빠져나간 순 유출 인구는 57만 1000명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1위였다. 전출 인구(131만 2000명)가 전입(74만 1000명) 인구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경제부처에서 광역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을 담당하는 관료는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앞으로 서울이 비싼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부유한 노인들만 사는 곳으로 변질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다음달 조기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도 고단한 직장인 달래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수도권 광역 급행열차 대거 확충’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수도권 광역교통청 신설’을 공약으로 내건 것이 대표적이다.
출·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거창한 공약도 좋지만, 이보다 ‘출·퇴근길 교통사고 업무상 재해 인정’ 같은 민생 법안부터 챙겨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법원은 작년 9월 “회사가 제공하지 않은 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다가 죽거나 다친 것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불합치한다”며 올해까지 법 개정을 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은 여태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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