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소송 남발해 남의 빚 받아내던 대부업체들 `제동`

학운 2016. 2. 11. 15:51

법원이 개인의 부실채권을 대량 사들인 뒤 소송을 내 빚을 받아온 대부업체 대표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것으로 확인돼 무분별한 추심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남부지법 형사8단독 이영선 판사는 서울 구로구 소재 대부업체 K에셋대부 대표 김 모씨(43)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 2012년 11월 다른 대부업체인 D크레디트로부터 대출금 회수가 어려워진 부실채권 1517건(74억2229원 상당)을 헐값에 대량으로 인수했다. 이어 법원 전자독촉시스템에 접속해 채권자를 김씨가 대표로 있는 'K에셋대부'로 설정한 뒤 채무자들에게 원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는 소송(전자지급 명령)을 냈다. 부실채권에 대한 법원의 지급명령이 확정되면 이를 근거로 채무자 재산을 압류하는 등 채권추심을 시작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소송 폭탄을 맞은 채무자들의 민원이 커지면서 김씨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반면 김씨는 "대부업체로부터 부실채권을 인수해 채권추심을 한 것은 대부업법에 허용된 정당한 행위"라며 불법 채권추심 행위가 아니라고 반박해 왔다. 현행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대부업법)'에 따르면 등록한 대부업자는 채권의 양수와 추심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그러나 "기본적으로 대부업법의 입법 목적은 대부업자를 감시 감독해 불법 채권추심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대부업자의 영업을 보장하는 데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부업법상 추심 행위는 원칙적으로 대부업자가 돈을 빌려준 채무자로부터 돈을 받는 경우에 허용된다"며 "이 사건처럼 권리 실행만을 목적으로 채권을 양수해 반복적으로 소송을 한 경우는 대부업법에서 허용하는 채권추심 행위로 불 수 없다"고 봤다. 오히려 재판부는 대부업자들이 김씨처럼 부실채권에 대한 권리만을 가져오기 위해 채권을 양도받아 지급명령을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는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현행 변호사법에 따르면 (공인받지 않은 사람이) 타인의 권리 양수(양도)를 가장해 소송 등으로 권리를 실행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재판부는 "사회·경제적인 필요성에 따른 정당한 업무 범위 내에서는 변호사법 벌칙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2011년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바 있다"면서도 "김씨가 부실채권을 양도받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행위 등을 종합해 보면 정당한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부업계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대부업체들 사이에서 개인 부실채권을 서로 사고팔아 추심하는 것은 일반적인 업무 중 하나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데, 법원의 판결로 당장 불법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업계에 따르면 기업의 상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외상매출채권 등 비금융채권에 대한 권리 이전과 추심은 변호사를 선임해 처리하지만, 금융회사가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해 주고 발행한 대출채권 등 금융채권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판결을 보면 대부업체들이 변호사를 쓰지 않고 부실채권을 인수해 추심하면 변호사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대부업체들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측도 판결에 불복해 지난 4일 항소장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