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손님처럼 서점 들어가 절도…대법 "건조물침입죄는 아냐"

학운 2022. 6. 3. 08:15

서점에서 물건을 훔치면 건조물침입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평범한 손님처럼 서점에 들어갔다면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의 평온상태를 깨뜨린 게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건조물침입, 절도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8~9월 서울 종로구에 있는 서점 교보문고에 침입해 절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A씨는 지하 1층 디지털코너에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진열돼 있던 이어폰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A씨는 한 달여 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모두 230만여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기관은 A씨에게 절도뿐 아니라 건조물침입 혐의까지 적용했다. 절도라는 범죄를 목적으로 서점에 들어간 것이므로 건조물침입으로 봐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1심은 "A씨는 동종 절도 범행으로 수회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며 "절도로 집행유예 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고 저지른 것"이라며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건조물침입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침입 혐의가 인정되려면 출입 과정에서 폭력 등 위법한 수단을 사용해 거주자의 평온상태를 깨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거주자는 범죄를 목적으로 한 것을 알았다면 출입을 허용하지 않았겠지만, 그러한 거주자의 의사보단 출입 당시의 객관적·외형적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기존에는 '초원복집 사건'에 관한 판례를 근거로 A씨와 같은 범죄 목적의 출입행위를 침입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전원합의체는 지난 3월 침입 과정에서 거주자의 평온상태 침해 여부를 따져야 한다며 판례를 25년 만에 바꿨다.
             
이를 근거로 재판부는 "A씨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곳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들어갔다"며 "건물 관리자의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