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동창 B씨에게 300만원을 빌려줬습니다. 일주일 안에 돈을 갚겠다던 B씨는 연락이 점점 뜸해지더니 전화번호까지 바꾸며 이른바 '잠수'를 타버렸습니다.
2년 후 B씨의 결혼 소식이 들려옵니다. 빌려간 돈은 나몰라라하더니 1000만원짜리 패키지 신혼여행을 간다는 B씨에 A씨의 분노는 더욱 커졌는데요. A씨는 돈을 빌려준 내역을 들고 B씨의 결혼식장에 방문해 축의금으로 채무를 상환할 것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 무턱대고 돈 받으러 갔다간 '채무자 협박' 간주 가능
A씨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정말로 B씨 결혼식에 찾아가 빌려간 돈을 달라고 했다간 오히려 더 큰 곤경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졸업식 같은 자리에 참석한 와중에 채권자가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한다면 어떤 채무자라도 응하기 곤란할 텐데요.
채권자가 채무자의 직장이나 거주지 등에 찾아가 채무자가 얼마를 빌려갔고 얼만큼 오래 갚지 않았는지를 공연히 알리는 것은 위법입니다. 이는 채무자에 대한 협박으로 간주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채권추심법 제9조)
실제로 지난 6월 모 재벌 2세가 지인에게 빌려준 7억3000여만원을 받지 못하자 건장한 남성 8명을 대동하고 해당 지인의 딸 결혼식장에 들이닥쳤습니다. 이들은 접수대에서 축의금 880만원 가량을 퍼담았다가 추후 공동공갈 및 채권추심법 위반으로 고소당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사실을 알리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책임까지 져야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남편이 협력업체 직원에게 5억여원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비난성 글을 올린 주부에게 명예훼손죄가 인정,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저녁 9시 이후 채권추심을 위해 반복적으로 전화하는 행위 △본인 대신 주변인에게 채무 이행에 대한 독촉을 하는 행위 △채권 추심 중 해악의 고지를 하는 행위 등도 당연히 금지됩니다. 채권자는 채권 변제를 요구할 적법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채무자를 일부러 망신주거나 곤경에 빠뜨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 빌리고 전화번호 바꿈 '사기죄' 적용될 수도
A씨가 B씨 결혼식을 훼방놓기 보단 정식으로 B씨를 고소하는 방법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러나 B씨가 단순히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는 건 아닙니다.
남의 돈을 빌렸다가 갚지 않으면 사기죄가 적용됩니다. 사기죄는 사람을 속여서 재산상의 이익을 얻을 경우에 적용되는 범죄입니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우선 피의자가 피해자를 속이는 행위가 선행돼야 합니다. 그 결과 피해자가 착오를 해 자신의 금전을 처분하는 등의 행동을 함으로써 피의자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해야 하며 그 사이에 순차적인 인과관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대법원 2017. 9. 26. 선고 2017도8449 판결)채무불이행이 사기죄로 인정되려면 B씨가 A씨에게 처음 돈을 빌릴 때부터 해당 채무를 변제할 생각이나 능력이 아예 없었음이 증명돼야 합니다. 사기죄는 미수범도 처벌이 가능하기에 채무자가 추후 돈을 못 갚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기만 해도 충분한데요. 판례는 돈을 빌린 당시의 상황을 채무 변제 능력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돈을 빌릴 땐 빨리 갚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정도 여유도 있었으나 갑자기 경제 상황이 악화돼 채무를 미처 변제하지 못했다면 형사고소는 불가하고, 민사소송으로만 해결해야 합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주머니사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도 돈을 빌려준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법원 2021. 8. 26. 선고 2021도7942)A씨의 경우 B씨가 돈을 빌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번호를 바꾼 점, 당시 B씨가 충분한 변제능력이 있다고 믿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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