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금융판결

원상회복의무 입증은 집주인에게

학운 2021. 12. 1. 16:37

부산의 한 대학교 근처 원룸에서 월세로 살던 A씨는 이사를 나가기 위해 집주인에게 월셰 보증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주인 B씨가 보증금 300만원에서 원상회복비용 명목으로 74만원을 공제하겠다고 연락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B씨는 A씨가 사용하던 방의 청소비뿐 아니라 소모품 비용까지 보증금에서 공제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세면대호스 교체에 1만3000원, 컴퓨터 받침대 서랍 교체에 5만원 등 A씨가 망가뜨리지 않은 물건까지 비용을 청구했는데요. 심지어 B씨는 입주 당시부터 찢어져 있던 벽지의 교체 비용까지 A씨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A씨에겐 거주 당시 집안의 모습을 촬영하거나 기록해둔 자료도 거의 없습니다. 자신이 망가뜨리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내기 어려운 상황인 거죠. 이에 A씨는 B씨에게 "만일 자신이 망가뜨린 것이라면 이에 대한 증거를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B씨는 대답 대신 영수증이라며 손으로 쓴 쪽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낼 뿐입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씨는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원상회복의무 입증은 집주인에게

세입자는 계약기간 만료 후 집주인에게 집을 반환할 때 내부를 원 상태로 되돌려놔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를 원상회복의무라고 합니다. 집을 파손했다면 이를 물어줘야 하는 건 물론이고 새로 설치한 물건 또한 임대인의 요청이 있으면 철거해야 합니다. (민법 제654조)

이 원상회복의무의 기준이 종종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집주인은 "들어올 때와 똑같은 상태로 해놓고 나가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세입자는 "살다보면 이 정도 흠집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응수하곤 하는데요.


법원은 이와 관련, "'원상으로 회복한다고 함'은 사회통념상 일반적인 방법으로 사용했을 때도
그렇게 될 것인 상태라면 사용을 개시할 당시의 상태보다 나빠지더라도 그대로 반환하면 무방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2007. 5. 31. 선고 2005가합100279 판결)

특별한 약정이 있지 않은 이상 살면서 생긴 어느 정도의 때나 흠집까지 임차인이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말인데요. B씨가 주장하는 벽지 흠집이 A씨 입주 당시부터 존재했던 것이라면 A씨는 벽지 교체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소모품 배상은 어떨까요? 통상 전구나 호스 등의 간단한 수선 및 소모품 교체 비용은 임차인이 부담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B씨는 아예 망가지지도 않은 가구나 고칠 필요가 없는 물건에 대한 비용까지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판례는 원상회복의무의 입증책임은 임대인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수리 비용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 대항하기 위함입니다. (대전지방법원 2021. 5. 13. 선고 2019나110375) B씨 측에서 A씨가 소모품을 못 쓰게 만들었다고 증명하지 못하면 수리비를 청구하기 어렵습니다.

청소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입자가 누가 봐도 심할 정도로 집을 더럽게 해놓고 나간 게 아닌 이상 내지 않아도 되는 돈입니다. 단 임대차계약서에 청소비 지급 특약이 존재했을 때는 예외입니다.

보증금에서 맘대로 수리비를 공제한 B씨의 행동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까요? 임대인은 원상회복 의무를 어긴 임차인이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하지 않은 채 방을 빼려고 하면 그 비용만큼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습니다.

판례 또한 "부동산 임대차에 있어서 수수된 보증금은 임료채무, 목적물의 멸실·훼손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 등 임대차관계에 따른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것으로서 그 피담보채무 상당액은 임대차관계의 종료 후 목적물이 반환될 때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별도의 의사표시 없이 보증금에서 당연히 공제된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A씨 사연에선 집주인 B씨가 수리비 견적서를 제대로 제출하지도 않고 본래 보증금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돌려줬는데요. 이처럼 실제 원상회복 비용이 얼마인지 확인하지 못했거나 과한 금액이 공제됐다면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 등을 통해 대항하는 게 좋습니다.

아울러 B씨가 A씨에게 수리비 하에 돈을 받아놓고 집을 고치지 않은 채 그대로 제3자에게 다시 임대를 진행한다면 이는 불법입니다. 이런 경우 보증금에서 수리비 일체 공제가 불가능하며, B씨가 처음부터 A씨의 금전을 악의적으로 편취하려는 의사가 있었음이 증명되면 사기죄로의 고소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