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금융판결

“자차 부담금, 보험사가 떼먹었다”…연이은 판결에 업계 패닉

학운 2020. 4. 21. 23:09

"접촉 사고가 나서 자차보험 자기부담금을 내고 처리했는데, 그걸 상대방 차량의 보험사에서 받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운전자의 실제 경험담이 소비자들과 보험업계, 금융당국에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권리'를 '보험사의 권리'보다 우선시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그리고 그에 따라 내려지고 있는 일련의 1, 2심 판결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나온 결과입니다.

세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사건, <속고살지마>가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복잡한 법률 이슈지만 영상으로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https://bit.ly/2UGOJIN )


■뜻밖의 판결, "자기부담금만큼은 가입자 몫"

2019년 5월, 서울 서초구의 도로를 달리던 황 모 씨는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황 씨 차는 수리비는 127만 원이 나왔습니다. 황 씨는 일단 자기부담금 20만 원을 내고 자차보험으로 차량을 수리했습니다. 나머지 107만 원은 보험사가 낸 보험금으로 처리됐습니다.


황 씨 보험사는 이어서 과실 비율을 따져서 책임이 있는 만큼 수리비를 되돌려달라며 상대차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상대방의 과실 비율을 70%로 책정했고, 이에 따라 상대차 보험사는 전체 수리비(127만 원)의 70%인 약 89만 원을 황 씨 보험사에 지급했습니다.

“자기부담금은 소비자 황 씨 몫으로 남겨둬라”는 취지의 판결 내용


그런데 우연히 판결문을 확인한 황 씨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재판부가 상대 보험사가 책임져야 할 전체 수리비의 70%(약 89만 원) 가운데서, 황 씨가 낸 자기부담금(20만 원)은 황 씨가 가져가야 할 몫이니 남겨두고, 나머지 약 69만 원만 황 씨 보험사가 받으라는 취지로 판결한 것이었습니다. 보험사 간의 소송이어서 차량 운전자에게는 일체 통보되는 내용이 없다 보니, 자칫 전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못 준다" "이미 줬다"던 보험사들, 결국 지급

황 씨는 곧바로 판결문을 근거로 자신의 보험사에 "법원은 20만 원이 내 몫이라고 하니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는 "자기부담금은 반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거부했습니다. 이에 황 씨는 법률 자문 결과 자기부담금을 되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은 상대방 보험사란 사실을 알고 상대방 보험사에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 보험사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수리비의 70%)을 당신의 보험사로 보냈다. 당신네 보험사에 얘기하라"며 줄 게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황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리한 항의 끝에 황 씨는 상대 보험사로부터 14만 원, 황 씨의 보험사로부터 6만 원을 받아냈습니다.

황 씨의 사연이 알려진 것은 교통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TV> 을 통해서였습니다. '소리엘(황 씨의 아이디명)님의 전설'이라 불린 이 사례에서 결국 황 씨가 20만 원을 돌려받은 사연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부담금은 당연히 소비자가 내는 돈으로 어디선가 다시 받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해 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황 씨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한 변호사가 맞는다면 보험사가 그동안 소비자가 받아야 할 돈을 자신들이 몰래 챙겨왔다는 의미입니다. 한 변호사 추정대로라면 소멸시효인 3년 치를 따지면 6,0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남은 손해는 가입자 우선 몫"

황 씨가 자기부담금을 돌려받게 된 것은 상법 682조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2014다46211)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가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해서 손해가 생겼는데, 제3자의 책임(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도 일부 있습니다. 이때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내가 있을까요, 우리 보험회사가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규정이 상법 682조에 있습니다.


상법 682조에는 두 가지 경우를 나눠서 규정합니다. 우선 우리 보험회사가 내 손해를 전부 보전해줬을 때는 제3자에 대한 권리는 보험회사가 모두 갖는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내 차 수리비 100만 원을 우리 보험회사가 다 물어줬다면 당연히 우리 보험사가 상대 보험사에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다 갖게 하는 게 맞죠.

그런데 상법 682조에는 내 보험사가 내 손해를 다 물어주지 않았을 경우(자기부담금이 있는 경우 등)에는 우리 보험사는 내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상대 보험사에게 권리를 갖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이 규정을 해석하면서 '남아있는 손해액'에 대한 '보험가입자 우선'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보험가입자가 어떤 사고로 자기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았는데 손해를 일부 보전받지 못한 경우를 가정했습니다. 이때 자기 보험사가 사고를 일으킨 쪽으로부터 구상금을 받아올 경우, 남아있는 손해만큼의 금액을 가입자부터 챙겨주고, 보험사는 그러고 남은 금액만 챙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험사보다 가입자의 권리가 우선이라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취지였습니다.

■잇따른 "구상금은 가입자 몫으로 남겨라"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주로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 혹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때만 구성되는 재판부여서 여기서 나온 선고 결과는 의미가 막대합니다. 법원들은 당연히 이 판결을 기반으로 판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들 간의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에선 쌍방과실로 벌어진 자동차 사고에서 보험가입자가 낸 자기부담금을 '남은 손해액' 내지 '미보상손해액'이라고 판단하면서, 상대방 보험사에서 받아오는 구상금 가운데 이 금액만큼은 무조건 보험가입자가 우선이라는 판결이 이어졌습니다.

‘자기부담금은 소비자의 몫’이라는 판례


실제 사례를 보자면, 서울중앙지법 제7-1민사부는 자동차 사고 피해에 대한 보험사 간의 구상금 분쟁을 다룬 '2019나25676 구상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한 뒤, "보험자(보험사)가 제3자(상대방 보험사)에게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과 남은 손해액(자기부담금)의 차액 상당액에 한정되고, 구상에 있어서는 보험자가 아닌 피보험자(가입자)가 우선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가입자가 자기부담금에 대해선 상대방 보험사에게 우선적으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험가입자가 낸 자기부담금은 나중에 가입자가 달라고 요구할 때를 대비해 손대지 말고 상대방 보험사가 온전히 보관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법원 판결 '쉬쉬'한 보험사들…"환급 대상 아니어서"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런 법원 판결을 뻔히 알면서도 '쉬쉬'한 사실이 앞서 본 황 씨 사건을 계기로 드러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험사 간에 오간 소송의 결론을 가입자는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굳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심지어 가입자의 몫인 자기부담금을 "남겨두라"는 법원 판결도 무시한 채 자신들끼리 임의로 주고받기까지 했습니다.


보험사들의 항변은 무엇일까요? 일단 "자기부담금은 보험사와 가입자 사이의 계약에 따른 것이어서 가입자가 반드시 부담해야 하고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자기부담금 제도는 자기 차량 사고 수리 시 발생하는 손해액을 일정 비율로 가입자가 부담함으로써 과잉 수리 등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기에 자기부담금을 보험사가 지급할 책임이 없다", "대법원의 확정된 판례가 없다"고 합니다.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도 보험사와 동일한 입장입니다.

문제의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화재보험에 대한 것이어서, 자동차 보험에 딱 맞는 판결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자기부담금은 보험사를 위한 제도"

전문가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한문철 변호사는 "자기부담금은 가입자가 보험사의 계약에 따라 당연히 내는 게 맞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상대 보험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권을 통해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또 "자기부담금 제도는 오히려 소액의 피해 사고에 대해 보험가입자들이 보험처리를 꺼리게 해서 결국 그냥 자기 돈 내고 처리하게 해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게다가 쌍방과실 상황에서는 보험사끼리 상대 측이 과다 비용을 청구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도 일어나기가 매우 힘들다"고 반박합니다.

아울러, 소액사건의 경우 항소심 결론이 나오면 양측 모두 상고를 하지 않아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미 다수의 항소심이 있는 만큼 최종적 판단도 다수 이뤄진 셈이라고 지적합니다.(3천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은 실질적으로는 항소심이 끝입니다. 소액사건은 대법원 판결에 어긋날 때만 상고할 수 있는데 이미 하급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판결하고 있고, 만일 이에 어긋나게 판결한다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대법원 판례가 화재보험에만 관계된다는 보험사의 주장도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보험자 대위를 규정한 상법 682조의 해석에 관한 문제입니다. 나와 내 보험회사, 그리고 사고에 대해 일부 책임이 있는 제3자가 있는 상황에서 제3자가 보내올 돈을 나와 내 보험사가 어떻게 나눌지에 관한 규정입니다. 보험이 화재보험이건 자동차 보험이건 해상보험이건, 모두 손해보험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알고도 덮어왔던 보험사들, 뒤늦게 "대책 마련"

결국, 이번 사건은 보험사의 무책임한 대응이 초래한 측면이 큽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는데도, 법원들이 사법체계 최정점에서 내려진 그 판결에 따라 '자기부담금은 소비자 몫'이라는 판결을 내놓는데도, 눈치채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덮어왔다가 소비자의 문제 제기로 일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부담금을 상대 보험사가 돌려주라는 법원의 판결에 동의하기 힘들었다면, 보험사가 상고를 해서라도 법적으로 더 따져봤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우선'이라는 대법원의 상법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이들이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 건 '소비자 모르게 넘어가자'는 게 전부였습니다.

보험사들은 뒤늦게 "업계가 공동으로 대응해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금융감독원도 "현재 법원 판결대로라면 보험사기 예방 등의 효과를 가진 자기부담금 제도 자체가 훼손될 수 있어서 개선안을 찾아보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속고살지마>는 지켜졌어야 할 소비자의 권리임에도 업계의 모르쇠와 당국의 방관 속에 묻혀졌던 자기부담금 이슈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유튜브에서 '속고살지마'를 검색하고, 구독하고, 많이 시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소비자가 정당한 자기 권리를 챙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와 관찰의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과실비율로 따져본 자기 부담금 청구 금액 표도 제공합니다.

<참고: 보험회사 우선설 vs 피보험자 우선설>


※표 설명: 과실비율 내차 30%, 상대차 70%로 상대 보험사 70만 원 책임 가정, 보험회사 우선설에 따르면 이 돈 70만 원을 모두 내 보험사가 챙김. 이 경우 우리 쪽 과실 30만 원 중 나는 20만 원, 내 보험회사는 10만 원을 책임지게 되는 셈, 그러나 지금 법원은 피보험자 우선설에 따라 나한테 20만 원을 먼저 주고, 남은 50만 원만 내 보험회사에 줘야 한다고 판결. 이 경우 우리 쪽 과실 30만 원 중 나는 0원, 우리 보험회사는 30만 원(보험 처리한 수리비 80만 원-상대 보험사에서 받은 50만 원)을 책임지는 셈.

  • [속고살지마] “자차 부담금, 보험사가 떼먹었다”…연이은 판결에 업계 패닉
    • 입력 2020.04.21 (18:21)
    • 수정 2020.04.21 (20:16)
    속고살지마

"접촉 사고가 나서 자차보험 자기부담금을 내고 처리했는데, 그걸 상대방 차량의 보험사에서 받았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운전자의 실제 경험담이 소비자들과 보험업계, 금융당국에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권리'를 '보험사의 권리'보다 우선시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그리고 그에 따라 내려지고 있는 일련의 1, 2심 판결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나온 결과입니다.

세간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번 사건, <속고살지마>가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복잡한 법률 이슈지만 영상으로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https://bit.ly/2UGOJIN )


■뜻밖의 판결, "자기부담금만큼은 가입자 몫"

2019년 5월, 서울 서초구의 도로를 달리던 황 모 씨는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가 났습니다. 황 씨 차는 수리비는 127만 원이 나왔습니다. 황 씨는 일단 자기부담금 20만 원을 내고 자차보험으로 차량을 수리했습니다. 나머지 107만 원은 보험사가 낸 보험금으로 처리됐습니다.


황 씨 보험사는 이어서 과실 비율을 따져서 책임이 있는 만큼 수리비를 되돌려달라며 상대차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상대방의 과실 비율을 70%로 책정했고, 이에 따라 상대차 보험사는 전체 수리비(127만 원)의 70%인 약 89만 원을 황 씨 보험사에 지급했습니다.

“자기부담금은 소비자 황 씨 몫으로 남겨둬라”는 취지의 판결 내용


그런데 우연히 판결문을 확인한 황 씨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재판부가 상대 보험사가 책임져야 할 전체 수리비의 70%(약 89만 원) 가운데서, 황 씨가 낸 자기부담금(20만 원)은 황 씨가 가져가야 할 몫이니 남겨두고, 나머지 약 69만 원만 황 씨 보험사가 받으라는 취지로 판결한 것이었습니다. 보험사 간의 소송이어서 차량 운전자에게는 일체 통보되는 내용이 없다 보니, 자칫 전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못 준다" "이미 줬다"던 보험사들, 결국 지급

황 씨는 곧바로 판결문을 근거로 자신의 보험사에 "법원은 20만 원이 내 몫이라고 하니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험사는 "자기부담금은 반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거부했습니다. 이에 황 씨는 법률 자문 결과 자기부담금을 되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은 상대방 보험사란 사실을 알고 상대방 보험사에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상대방 보험사는 "우리는 이미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수리비의 70%)을 당신의 보험사로 보냈다. 당신네 보험사에 얘기하라"며 줄 게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황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리한 항의 끝에 황 씨는 상대 보험사로부터 14만 원, 황 씨의 보험사로부터 6만 원을 받아냈습니다.

황 씨의 사연이 알려진 것은 교통전문 한문철 변호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한문철TV> 을 통해서였습니다. '소리엘(황 씨의 아이디명)님의 전설'이라 불린 이 사례에서 결국 황 씨가 20만 원을 돌려받은 사연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부담금은 당연히 소비자가 내는 돈으로 어디선가 다시 받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 해 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황 씨에게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한 변호사가 맞는다면 보험사가 그동안 소비자가 받아야 할 돈을 자신들이 몰래 챙겨왔다는 의미입니다. 한 변호사 추정대로라면 소멸시효인 3년 치를 따지면 6,0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남은 손해는 가입자 우선 몫"

황 씨가 자기부담금을 돌려받게 된 것은 상법 682조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2014다46211)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와, 내가 가입한 보험회사가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해서 손해가 생겼는데, 제3자의 책임(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도 일부 있습니다. 이때 제3자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내가 있을까요, 우리 보험회사가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규정이 상법 682조에 있습니다.


상법 682조에는 두 가지 경우를 나눠서 규정합니다. 우선 우리 보험회사가 내 손해를 전부 보전해줬을 때는 제3자에 대한 권리는 보험회사가 모두 갖는다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내 차 수리비 100만 원을 우리 보험회사가 다 물어줬다면 당연히 우리 보험사가 상대 보험사에게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다 갖게 하는 게 맞죠.

그런데 상법 682조에는 내 보험사가 내 손해를 다 물어주지 않았을 경우(자기부담금이 있는 경우 등)에는 우리 보험사는 내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상대 보험사에게 권리를 갖는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 1월 22일 대법원은 이 규정을 해석하면서 '남아있는 손해액'에 대한 '보험가입자 우선'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보험가입자가 어떤 사고로 자기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받았는데 손해를 일부 보전받지 못한 경우를 가정했습니다. 이때 자기 보험사가 사고를 일으킨 쪽으로부터 구상금을 받아올 경우, 남아있는 손해만큼의 금액을 가입자부터 챙겨주고, 보험사는 그러고 남은 금액만 챙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보험사보다 가입자의 권리가 우선이라는 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취지였습니다.

■잇따른 "구상금은 가입자 몫으로 남겨라"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주로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 혹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때만 구성되는 재판부여서 여기서 나온 선고 결과는 의미가 막대합니다. 법원들은 당연히 이 판결을 기반으로 판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보험을 판매하는 손해보험사들 간의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원에선 쌍방과실로 벌어진 자동차 사고에서 보험가입자가 낸 자기부담금을 '남은 손해액' 내지 '미보상손해액'이라고 판단하면서, 상대방 보험사에서 받아오는 구상금 가운데 이 금액만큼은 무조건 보험가입자가 우선이라는 판결이 이어졌습니다.

‘자기부담금은 소비자의 몫’이라는 판례


실제 사례를 보자면, 서울중앙지법 제7-1민사부는 자동차 사고 피해에 대한 보험사 간의 구상금 분쟁을 다룬 '2019나25676 구상금' 판결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용한 뒤, "보험자(보험사)가 제3자(상대방 보험사)에게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은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과 남은 손해액(자기부담금)의 차액 상당액에 한정되고, 구상에 있어서는 보험자가 아닌 피보험자(가입자)가 우선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보험가입자가 자기부담금에 대해선 상대방 보험사에게 우선적으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보험가입자가 낸 자기부담금은 나중에 가입자가 달라고 요구할 때를 대비해 손대지 말고 상대방 보험사가 온전히 보관하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법원 판결 '쉬쉬'한 보험사들…"환급 대상 아니어서"

문제는 보험사들이 이런 법원 판결을 뻔히 알면서도 '쉬쉬'한 사실이 앞서 본 황 씨 사건을 계기로 드러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보험사 간에 오간 소송의 결론을 가입자는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굳이 달라고 요구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갔던 것입니다. 심지어 가입자의 몫인 자기부담금을 "남겨두라"는 법원 판결도 무시한 채 자신들끼리 임의로 주고받기까지 했습니다.


보험사들의 항변은 무엇일까요? 일단 "자기부담금은 보험사와 가입자 사이의 계약에 따른 것이어서 가입자가 반드시 부담해야 하고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자기부담금 제도는 자기 차량 사고 수리 시 발생하는 손해액을 일정 비율로 가입자가 부담함으로써 과잉 수리 등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도입됐기에 자기부담금을 보험사가 지급할 책임이 없다", "대법원의 확정된 판례가 없다"고 합니다.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도 보험사와 동일한 입장입니다.

문제의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화재보험에 대한 것이어서, 자동차 보험에 딱 맞는 판결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자기부담금은 보험사를 위한 제도"

전문가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한문철 변호사는 "자기부담금은 가입자가 보험사의 계약에 따라 당연히 내는 게 맞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상대 보험사로부터 손해배상 청구권을 통해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또 "자기부담금 제도는 오히려 소액의 피해 사고에 대해 보험가입자들이 보험처리를 꺼리게 해서 결국 그냥 자기 돈 내고 처리하게 해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게 하는 부작용도 있다. 게다가 쌍방과실 상황에서는 보험사끼리 상대 측이 과다 비용을 청구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도 일어나기가 매우 힘들다"고 반박합니다.

아울러, 소액사건의 경우 항소심 결론이 나오면 양측 모두 상고를 하지 않아 대법원까지 가지 않고 종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이미 다수의 항소심이 있는 만큼 최종적 판단도 다수 이뤄진 셈이라고 지적합니다.(3천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은 실질적으로는 항소심이 끝입니다. 소액사건은 대법원 판결에 어긋날 때만 상고할 수 있는데 이미 하급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판결하고 있고, 만일 이에 어긋나게 판결한다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대법원 판례가 화재보험에만 관계된다는 보험사의 주장도 타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는 보험자 대위를 규정한 상법 682조의 해석에 관한 문제입니다. 나와 내 보험회사, 그리고 사고에 대해 일부 책임이 있는 제3자가 있는 상황에서 제3자가 보내올 돈을 나와 내 보험사가 어떻게 나눌지에 관한 규정입니다. 보험이 화재보험이건 자동차 보험이건 해상보험이건, 모두 손해보험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알고도 덮어왔던 보험사들, 뒤늦게 "대책 마련"

결국, 이번 사건은 보험사의 무책임한 대응이 초래한 측면이 큽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는데도, 법원들이 사법체계 최정점에서 내려진 그 판결에 따라 '자기부담금은 소비자 몫'이라는 판결을 내놓는데도, 눈치채는 소비자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덮어왔다가 소비자의 문제 제기로 일이 터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기부담금을 상대 보험사가 돌려주라는 법원의 판결에 동의하기 힘들었다면, 보험사가 상고를 해서라도 법적으로 더 따져봤어야 합니다. '소비자가 우선'이라는 대법원의 상법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면, 이들이 정부나 국회를 상대로 법 개정 등 제도 개선을 요구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 건 '소비자 모르게 넘어가자'는 게 전부였습니다.

보험사들은 뒤늦게 "업계가 공동으로 대응해 법적인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나섰습니다. 금융감독원도 "현재 법원 판결대로라면 보험사기 예방 등의 효과를 가진 자기부담금 제도 자체가 훼손될 수 있어서 개선안을 찾아보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속고살지마>는 지켜졌어야 할 소비자의 권리임에도 업계의 모르쇠와 당국의 방관 속에 묻혀졌던 자기부담금 이슈를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유튜브에서 '속고살지마'를 검색하고, 구독하고, 많이 시청해 주시길 바랍니다. 소비자가 정당한 자기 권리를 챙기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감시와 관찰의 노력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과실비율로 따져본 자기 부담금 청구 금액 표도 제공합니다.

<참고: 보험회사 우선설 vs 피보험자 우선설>


※표 설명: 과실비율 내차 30%, 상대차 70%로 상대 보험사 70만 원 책임 가정, 보험회사 우선설에 따르면 이 돈 70만 원을 모두 내 보험사가 챙김. 이 경우 우리 쪽 과실 30만 원 중 나는 20만 원, 내 보험회사는 10만 원을 책임지게 되는 셈, 그러나 지금 법원은 피보험자 우선설에 따라 나한테 20만 원을 먼저 주고, 남은 50만 원만 내 보험회사에 줘야 한다고 판결. 이 경우 우리 쪽 과실 30만 원 중 나는 0원, 우리 보험회사는 30만 원(보험 처리한 수리비 80만 원-상대 보험사에서 받은 50만 원)을 책임지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