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훔쳐보기' 하려고 담장 탄 40대 '무죄' 이유는?

학운 2020. 2. 13. 07:56

담장에 올라 이웃집 여성을 훔쳐본 40대 남성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 남성이 올라탄 담장을 '집'의 일부로 보기는 어렵다는 판단 때문인데요. 어떤 사건인지 같이 보시죠.

법원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동부지법 형사3단독 조현락 판사는 40대 회사원 A씨의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씨는 건물 옆에 세워진 담장에 올라 B씨의 집안을 훔쳐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검찰은 담장도 집의 일부니까 담장에 오른 행위는 주거침입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재판에서 쟁점은 검찰 판단대로 A씨가 오른 담장을 집의 일부로 볼 수 있느냐로 모아졌습니다. 이 담장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담장과 조금 달랐기 때문인데요.

이 담장은 건물을 완전히 둘러싸 집을 보호하는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옆 건물과 경계를 표시하려고 건물 사이에 50cm 높이로 세운 것이었습니다. 설치 장소와 구조로 볼 때, 눈에 띄긴 하겠지만 누구나 올라탈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죠.

조 판사는 이런 점을 감안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례예 따르면 외부인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에 침입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데요. 이 담장을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죠.

조 판사는 "A씨가 올라선 구조물은 그 높이가 50㎝ 정도에 불과해 이웃건물과의 경계를 표시하는 구조물로만 인식될 여지가 상당히 크다"며 "또 높이와 형태 등에 비춰 일반인의 통행을 차단하기 위한 물적 설비로 인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냥 건물 사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쌓았을 뿐, 집에 딸린 건조물로서 외부출입을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담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만 보고 담장 너머 남의 집을 엿봐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A씨처럼 남의 집을 훔쳐보다 붙잡힌 30대 남성 B씨가 지난해 7월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B씨는 담장 너머로 얼굴을 들이밀어 남의 집을 훔쳐본 혐의를 받았는데요. 이런 식으로 이틀 사이 대낮에 네 번이나 범행했다고 합니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주거 평온을 깨뜨리고 불안감을 조성했다"며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특히 B씨가 같은 범죄로 이미 세 번이나 처벌받았다는 점에서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