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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야 할 도심에 없는 매입임대

학운 2019. 10. 23. 23:11

경향신문이 한국도시연구소에 의뢰해 분석한 ‘전국 매입임대주택 분포 현황’을 보면, 지난달 기준으로 전국 매입임대 12만5858가구 중 절반 이상(6만8372가구)이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다. 전체 매입임대의 4분의 1가량인 3만1914가구가 서울에 있다. 이 분석은 전국에 있는 매입임대 주소를 입력해 지리 좌표로 변환하는 지오코딩 기법으로 이뤄졌다.

매입임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기업이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사들여 생계·의료수급자, 장애인 등에게 빌려주는 공공임대주택이다. 도심에 영구임대와 같은 대규모 임대단지를 공급할 수 없으니 기존 주택을 확보해 공공임대를 공급하는 개념이다. 겉으로는 임대주택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지 않아 취학연령 자녀가 있거나 부정적 시선을 꺼리는 가구가 선호한다.

문제는 지역별 분포가 불균등한 데다 매입임대조차 도심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중 매입임대가 가장 많은 곳은 강동구(2678가구)였다. 이어 성북구(2412가구), 도봉구(2235가구), 강서구(2190가구) 등의 순이었다. 대개 경기도와 접한 외곽이었다. 이 중 강서구 등에 소득 1~2분위 저소득층이 주로 입주하는 영구임대가 상당수 몰려 있다.

반면 중구(52가구), 용산구(75가구), 성동구(183가구), 영등포구(302가구), 종로구(340가구) 등 서울에서도 교통이 편리하고 일자리가 몰려 있는 도심에는 매입임대 공급이 극히 적었다. 영구임대는 단 한 곳도 없다. 대신 좁은 골목 끝이나 낡은 건물 맨 위층에 도시 빈민들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 쪽방촌과 고시원이 난립해 있다. 가난한 사람이 많은 동네일수록 평당 임대료가 비싸지만, 주변에 이렇다 할 공공임대는 없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필요한 곳에 공급하는 게 아니라 낮은 매입단가로 집을 구할 수 있는 곳에 공공임대 공급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 기준 1가구당 매입임대 매입단가는 평균 1억1200만원이다.

서울보다 토지 확보가 수월한 경기도에도 공공임대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매입임대와 영구임대 공급량은 각각 2만6308가구, 2만7155가구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으로 1000가구당 매입임대와 영구임대의 공급량은 각각 5.8가구, 6가구에 그친다. 서울의 8.2가구, 12가구에도 못 미친다. 17개 시·도에서 1000가구당 매입임대 공급이 10가구를 넘는 지역은 광주(13.0가구), 대전(12.8가구), 전남(10.3가구)밖에 없었다.

최 소장은 “가난한 사람들이 서울에서 못 견디면 주변으로 밀려나가는 상황이므로 경기도의 공공임대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며 “인구가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전체 주택 수의 25% 이상을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프랑스처럼 지역마다 일정 비율을 할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 불량주택 하자보수 ‘늑장 대응’



건설업계는 매입임대를 건설경기 불황의 돌파구로 인식한다. 매입임대 매입 공고가 뜨면 소규모 건설업체들은 앞다퉈 보유 주택의 매도를 신청한다. LH 등은 건물을 통째로 매입하기 때문에 이윤이 낮아도 한꺼번에 ‘처분’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교통 접근성이나 편의시설 등 주거환경이 좋을 리 없다. 최근 매도 신청이 몰리면서 입지와 주거 적정성 등을 따지는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졌지만, 정부 의지보다 어떤 건설업체가 참여하는지에 따라 주택 품질이 달라질 수 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땅값이 싸서 아예 임대로 넘길 목적으로 짓는 경우도 있다. 전철역에서 30분 걸어야 하는 곳에 지은 적도 있다. 우리는 팔면 끝이다. (하자 보수 같은) 다음은 LH 등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반지하나 지하 주거도 매입임대로 사들였다. 매입 당시부터 상태가 좋지 않던 불량주택도 많다. 매입임대 공급이 주먹구구로 이뤄지면서 빚어지는 현상이다. 복수의 주거복지단체 관계자들은 “하자 발생 건수가 많은데도 집주인인 LH는 늑장 대응을 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라며 “입주민의 나이와 성별 등 특성에 맞춘 주택 배정 등 최소한의 관리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의 LH 매입임대에 살고 있는 유영태씨(64·가명)는 지난겨울 집 안에 곰팡이가 피고 바닥과 벽에 습기가 차서 고생했다. 하자 보수 신청 후 보름을 기다려 수리했지만 비가 많이 오면 여전히 벽에 물기가 맺힌다. 유씨는 “부실공사라 LH에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며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 참고 살아야지”라고 말했다.

유씨가 참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가 사는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세대주택 5층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허리와 무릎이 욱신거린다. 높은 임대료도 마지못해 내고 있다. 취약계층 주거지원으로 보증금은 50만원이지만, 월 임대료가 27만4000원이 넘는다. 주거급여를 최대치인 23만3000원 받아도 모자란다.

LH는 “서울 주택 시세가 지속적으로 올라 매입임대의 임대료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