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상 2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난 6일 오후 9시 한강공원 일대는 텐트촌(村)이나 다름없었다. 텐트 안에서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는 가족들에게 여의도안내센터 단속팀 공무원이 다가갔다. “지금부터 텐트 펴시면 불법입니다. 과태료가 100만원이에요.” “아, 왜 우리만 갖고 그래요!” 텐트 안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여름철 한강공원에서는 ‘텐트 소동’이 벌어진다. 단속 공무원들은 “텐트를 접으라”고 달래고, 시민들은 “왜 그래야 하냐”며 맞서는 것이다. 서울시 조례(한강공원 보존 및 이용에 관한 기본조례)는 심야 텐트 설치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규정이 복잡한 데다 ‘심야 텐트’가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아 매일 밤 실랑이가 벌어진다.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잔디밭에 ‘심야 텐트’가 펼쳐져 있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밤 9시 이후 텐트를 펼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다비 기자
이날 단속에 나선 여의도안내센터 공무원 A씨와 청원경찰 반장 B씨 두 사람도 진땀을 뺐다. “기사에 이름은 내시면 안 됩니다. 단속에 불만을 품은사람들이 (우리) ‘신상’을 터는 일도 있어서요.”두 사람이 말했다. 디지털편집국 기동팀이 한강공원 심야 텐트 단속에 동행했다.
◇ “접어라” “못한다” 한강공원에선 매일 밤 ‘텐트 소동’
첩첩이 텐트 숲이었다. 단속은 텐트 앞에서 “좀 접어달라”며 읍소하는 방식이었다. “텐트를 강제철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계도(啓導) 위주로 하고 있어요. ‘공무원이 기분 나쁘게 말한다’ ‘단속이 마음에 안 든다’고 대뜸 고함치는 분도 많습니다. 요즘 같이 더울 때는 심야 텐트족이 더 늘어나서 매일이 전쟁이에요.” 공무원 A씨가 말했다.
이날도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나무에 해먹(그물침대)를 걸어놓은 연인에게 “나무 보호 차원에서 좀 걷어주세요”라고 말을 건 것이 발단이었다. 기분이 상한 연인이 에프(F)자로 시작하는 영어 욕설을 퍼부으며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단속 공무원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통첩하면서 상황은 종료됐다. 기자는 분위기 때문에 등줄기에 땀이 흘렀지만, 청원경찰 B씨는 “이런 일은 익숙하다”고 했다.
텐트를 접고 돌아간 일부가 ‘민원’으로 보복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서울시에 이의를 신청하거나 소액심판청구로 맞대응하는 시민들도 있다”며 “‘왜 내가 과태료를 내야 하느냐’라는 분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7일 밤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담당 공무원이 텐트 안에 있는 커플에게 “밤 9시 이후에는 텐트를 접어야 한다”고 계도하고 있다./이다비 기자
◇심야 텐트·폭죽· 취사 모두 불법…“누가 이걸 외우느냐” 불만도
이날 단속에 적발된 대부분은 “텐트 펴는 것이 불법인지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텐트 대여업체가 해가 져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서울시 조례 규정도 한 몫하고 있다.
서울 한강공원 보존·이용에 관한 기본조례에 따르면 4~10월까지는 밤 9시 이후, 11~3월까지는 밤 6시 이후 한강에 텐트를 설치하는 것이 불법이다. 위반하면 100만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과태료를 물게 되어 있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한강공원에서는 원래 야영·취사가 불법이지만 햇빛이 따가운 탓에 2014년부터 그늘막 개념으로 텐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만 허용해준 것”이라고 했다.
여의도안내센터에서 오후 8시부터 “텐트설치 행위는 불법”이라는 경고 방송을 내보내지만 허사다. “오히려 경고방송이 시끄럽다는 민원만 들어옵니다.” A공무원이 한숨을 쉬었다.
심야 텐트뿐만 아니라, 한강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대부분이 불법이다. △삼겹살 굽기 등 취사(과태료 100만원) △금지 구역 낚시(50~100만원 △쓰레기 무단투기(10만원) △나무·식물 훼손(10만원) △소음·악취(7만원)△무단 노점(7만원) △폭죽(10만원) 도 모두 과태료가 부과된다. 한강공원에서 만난 이모(26)씨는 “솔직히 가족, 친구, 연인과 놀러 나오면서 서울시 조례를 외우고 나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옆 사람들도 재미있게 폭죽을 터뜨려서 우리도 사왔어요. 노점상 아저씨가 팔고 있던데 왜 불법인가요?” 이날 단속에는 공원에서 폭죽을 쏘아대던 중학생들도 적발됐다.
지난 7일 밤 여의도한강공원에서 중학생 무리가 불꽃놀이를 하고 있다. 한강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안소영 기자
◇하루 4만명 찾는 여의도한강공원, 단속 인원은 5명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6~9월 사이를 극(極)성수기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 당국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들이 몰려, 단속도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왜 우리만 잡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한강공원 연간 이용객은 7000만명에 달하지만, 단속인원은 175명 정도다. 특히 이용객이 많이 몰리는 여의도·뚝섬·반포 등지 단속전담 인원은 20명에 불과하다. 여의도 한강공원의 경우 하루에만 4만명의 ㅇ인파가 몰리지만 단속인원은 4~5명에 그치고 있다. 단속 대상이 단속 인원의 약 1만배에 달하는 것이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단속전담공무원만 현장에서 즉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일손이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단속 전담인력 증원을 검토하지만, 예산 문제가 있어 즉각적으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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