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요인으로 흥분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보험금 받을 수 있어"]
사망보험이라고 해서 피보험자가 죽기만 하면 무조건 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가 계약을 체결할 당시, 보험계약자는 보험 사고가 발생할 때 보험금을 수령할 사람인 보험수익자를 지정해두게 된다. 사망보험에서의 보험 사고에 해당하는 '피보험자의 사망'이 보험수익자로 인한 것이거나 피보험자 스스로의 자살에 의한 경우 등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는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험약관을 두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해 피보험자가 순간적인 공황상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이 죽음을 '자살'로 볼 것인지, 아니면 '외부 요인으로 인한 죽음'으로 볼 것인지 논란이 돼 대법원까지 갔던 사례(2005다49713)가 있다.
A씨는 남편 B씨와 재정보증 등 경제적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A씨는 시댁, 친정과도 계속된 갈등을 겪어 왔고, B씨와의 사이에 낳은 세 자녀를 돌보며 남편의 회사업무까지 돕는 등 과도한 업무에 시달려 왔다. 특히 A씨는 막내 아이를 출산한 지 1년 만에 충수절제술을 받고 각종 병명으로 병원을 오가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쇠약해져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술에 취해 귀가하던 B씨는 A씨가 자신의 형수이자, 그녀의 손위 동서인 C씨와 전화를 하며 재정보증문제로 언쟁을 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전화기를 던지고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수차례 뺨을 때렸다. 이에 A씨 역시 흥분해 텔레비전을 넘어뜨리는 등 격렬한 부부싸움을 했고, B씨는 A씨의 멱살을 잡고 베란다 난간으로 끌고 가 그녀의 상체를 베란다 밖으로 밀었다. 그러자 자녀들은 A씨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리를 잡고 울며 B씨에게 애원했고, 자녀들의 만류에 B씨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베란다를 떠나 거실로 가는 순간 A씨는 베란다 밖으로 뛰어 내려 숨졌다.
숨진 A씨 앞으로는 그녀를 피보험자로, 남편을 수익자로 하는 사망보험계약이 체결돼 있었다. 하지만 보험회사 측은 사망보험금은 피보험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경우에는 지급하지 않게 되어 있는 약관상의 면책사유를 들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B씨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A씨의 죽음이 자살, 즉 피보험자인 A씨가 자신의 자유 의지에 따라 목숨을 끊은 것인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A씨의 죽음은 이 사건 보험약관상의 면책예외사유에 해당한다"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상법 제659조 제1항은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규정하고, 상법 제732조의2는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에서 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생긴 경우에도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규정들에 따르면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 있어서도 피보험자 등의 고의로 인하여 사고가 생긴 경우에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설명했다.
피보험자가 고의로 보험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보험계약상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우에도 보험금이 지급된다고 한다면 보험계약이 보험금 취득 등 부당한 목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상법 제659조 제1항과 제732조의2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볼 때,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 그 자살은 사망자가 자기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자기의 생명을 절단해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행위를 의미한다"고 봤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위 사례에서의 A씨의 자살은 고의적 자살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경우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직접적인 원인행위가 외래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그 보험사고는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서 재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A씨가 베란다 밖으로 투신해 숨진 사고는 A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제한된 상태에서 투신하며 사망의 결과가 발생하게 된 우발적인 사고로서,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나 '의도적인 자해'에 해당하지 않아 보험회사의 보험약관상의 ‘재해’에 해당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결국 A씨는 당시 격한 부부싸움으로 극도의 흥분되고 불안한 심리상태를 이기지 못해 순간적인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죽게된 것으로 판단받았다. 자신의 투신으로 빚어질 결과와 그로 인한 가족들 및 주변 상황의 변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거나 예측하지 못했고, 단지 극도로 모멸스럽고 격분된 순간을 벗어날 방편으로 베란다에서 뛰어 내림으로써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A씨는 보험약관 상의 면책사유에 해당되지 않은 사유로 죽은 것이 돼 보험회사는 보험금의 수익자로 계약서상 명시된 A씨의 남편 B씨에게 A씨의 사망을 이유로 한 보험금을 지급해야 했다.
◇ 판례 팁 = 보험과 관련해서는 '보험계약자'와 '피보험자', '보험수익자'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먼저 보험계약자는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으로, 보험회사와 자기의 이름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보험료 납입의 의무를 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리고 피보험자란 생명보험계약에서 사람이 사망하는 보험사고 발생의 '객체', 즉 사고를 당한 사람을 의미하며, 손해보험계약에서는 보험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손해를 입은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피보험자는 반드시 보험 계약의 당사자(보험계약자 혹은 보험가입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이다.
끝으로 보험수익자는 보험사고가 발생할 경우 보험사에 대해 보험금을 지급해달라는 청구를 할 수 있는 권한(청구권)을 갖는 사람을 뜻한다. 손해보험의 경우 피보험자가 곧 보험수익자가 되지만, 생명보험의 경우는 피보험자와 보험수익자가 다를 수 있다.
◇ 관련 조항
- 상법
제659조(보험자의 면책사유)
① 보험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생긴 때에는 보험자는 보험금액을 지급할 책임이 없다.
제732조의2(중과실로 인한 보험사고 등)
①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에서는 사고가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나 보험수익자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발생한 경우에도 보험자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② 둘 이상의 보험수익자 중 일부가 고의로 피보험자를 사망하게 한 경우 보험자는 다른 보험수익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