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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료법은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 중 일정 요건을 갖춘 사람을 ‘조산사’로 인정하며 의료인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따라서 조산사는 일종의 전문 간호사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산부인과 병원에서 조산사가 분만을 관장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조산사의 업무와 주의의무를 부담하는 범위에 관한 문제도 중요해졌다.
이와 관련해 병원에서 분만을 관장하던 조산사가 출생한 신생아의 건강 이상 징후가 있음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 신생아를 숨지게 했다면 주의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대법원 판단(2006다79520)이 있다.
경남 진주시의 병원 산부인과 소속 조산사로 근무하던 A씨는 1999년 4월, 진통을 느끼고 분만을 위해 입원한 산모의 분만을 관장하며 간호조무사 한 명을 대동했다.
입원 직후 산모와 태아의 상태는 모두 정상이었으나, 유도분만제인 옥시토신을 주사하고 인공으로 양막을 파막시키는 과정에서 양수의 태변착색을 발견했지만 산부인과 전문의 등을 곧바로 호출하지 않았다. 산모는 자연분만으로 3.2kg의 신생아를 낳았다.
하지만 분만실에서 신생아는 호흡을 하지 않았고, A씨는 신생아의 코에 산소가 나오는 고무관을 대주었지만 신생아는 결국 뇌성마비 상태가 됐다.
이에 신생아의 부모들은 A씨와 병원장을 상대로 A씨가 불법행위를 했음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담당하는 의료인은 해당 진료 환경과 조건에서 최선의 진료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법상 의료인인 조산사에게 ‘분만과정에서 산모와 태아의 상태가 정상적인지 여부를 계속적으로 관찰하고 산부인과 전문의 등으로 하여금 발생가능한 응급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도록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적시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응급상황에서 조산사가 취할 수 있는 범위 내의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A씨는 신생아의 분만과정에 태변착색 등 이상 징후를 발견했음에도 산부인과 전문의 등에게 신생아의 상태를 늦게 보고했다”며 “A씨로 인해 신생아는 의사로부터 적시에 기관 내 삽관을 통한 태변제거 및 인공호흡 등 응급조치를 받을 기회를 상실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A씨는 분만실에서 호흡을 하지 않는 신생아의 코에 산소가 나오는 고무관을 대주었을 뿐, 마스크와 백을 이용한 인공호흡을 시키지 않는 등 조산사로서 스스로 가능한 범위 내의 심폐소생술도 제대로 하지 않은 의료과실이 있다”고 덧붙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지 않은 의료과실로 인정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병원에서 분만을 관장하던 A씨의 의료과실로 인해 출생한 신생아가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어 뇌성마비 상태가 됐다고 보고, A씨에게 뇌성마비 상태가 된 신생아와 그 부모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 판결팁=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의사면허 소지자)는 의료와 보건지도에 종사할 수 있고,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법에서 정한 일정한 절차를 거치면 조산사 면허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조산사는 조산과 임부·해산부·산욕부 및 신생아에 대한 보건과 양호지도에 종사할 수 있지만, 의료법은 의사와 달리 조산사는 병‧의원이 아닌 조산원만을 개설할 수 있고, 조산원을 개설할 경우에도 반드시 지도 의사를 따로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의료법상의 조산사는 일종의 전문 간호사인 것이다.
이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은 신생아의 뇌성마비가 과연 조산사 A씨의 의료과실로 인한 것인지 여부였다. 즉, 의료사고에서 의료과실이 있었다고 인정되기 위해서는 의료과실과 의료사고가 원인과 결과가 되는 관계(인과관계)라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하고, 입증책임의 원칙상 이를 증명해야할 책임은 피해자인 환자 측이 부담한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불법행위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칙적으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은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고 보면서도, 의료사고의 경우에는 그 분야가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감안해 낮은 정도의 증명만으로도 입증이 됐다고 봐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환자 측은 의료인의 과실을 증명함에 있어 ‘의료인의 과실’과 ‘사고로 인한 피해 발생’ 사이에 개연성이 담보되는 ‘간접사실’들만 제시하면, 의료인의 과실은 ‘추정’되게 된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의료인인 조산사 A씨가 신생아의 응급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과실과 A씨가 뇌성마비 상태가 된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뇌성마비는 대개 그 원인을 밝혀내기 어렵고 분만 중의 원인이 작용하는 경우는 6∼8%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뇌성마비의 가능한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분만 도중 발생한 저산소성-허혈성 뇌손상을 표상하는 간접사실들이 인정되는 반면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다른 요인의 존재를 추인하게 할 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면서 “신생아의 뇌성마비는 A씨의 의료과실로 인한 분만 중 저산소성-허혈성 뇌손상 때문에 발생했다고 추정함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 관련 조항
의료법
제2조(의료인)
① 이 법에서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조산사및 간호사를 말한다.
② 의료인은 종별에 따라 다음 각 호의 임무를 수행하여 국민보건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할 사명을 가진다.
4. 조산사는 조산(조산)과 임부(임부)ㆍ해산부(해산부)ㆍ산욕부(산욕부) 및 신생아에 대한 보건과 양호지도를 임무로 한다.
제6조(조산사 면허)
조산사가 되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로서 제9조에 따른 조산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1. 간호사 면허를 가지고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의료기관에서 1년간 조산 수습과정을 마친 자
2.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외국의 조산사 면허를 받은 자
제7조(간호사 면허)
① 간호사가 되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로서 제9조에 따른 간호사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아야 한다.
1. 평가인증기구의 인증을 받은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이나 전문대학[구제(구제) 전문학교와 간호학교를 포함한다]을 졸업한 자
2. 보건복지부장관이 인정하는 외국의 제1호에 해당하는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의 간호사 면허를 받은 자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입학 당시 평가인증기구의 인증을 받은 간호학을 전공하는 대학 또는 전문대학에 입학한 사람으로서 그 대학 또는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해당 학위를 받은 사람은 같은 항 제1호에 해당하는 사람으로 본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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