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원은 의사에게 진료계약상의 부수 의무로서 설명의무가 있다고 본다. 즉, 의사는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그의 상태와 예후 등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에 따라 환자는 진료에 동의하거나 이를 거절할 수 있다.
이 때, 의사가 환자 개개인들에게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해야 충분한 설명을 한 것인지 의문일 수 있다. 환자들마다 가지고 있는 의료 지식과 설명에 대한 이해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 여부는 일률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설명의 대상이 되는 당해 환자가 이해할 정도인지에 따라 가려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약 10년의 간호사 경력이 있던 A씨는 1999년 결혼한 후 4차례 유산을 반복하다가 2004년 5월 체외수정 및 배아이식으로 세쌍둥이를 임신했다. X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오던 A씨는 임신 11주 무렵 A씨는 셋 중 한 명의 태아를 자궁 내 자연유산으로 잃었고, 임신 15주 무렵에는 배를 가리고 흉부 방사선촬영을 받은 후 유산 방지를 위한 자궁경부봉축술을 받았다.
그런데 임신 29주 무렵 A씨는 호흡곤란, 빠른 호흡, 기침 및 콧물 증상 등이 발생해 X병원 응급실로 내원했다. 내과 의료진들은 A씨에게 흉부 방사선촬영(Chest X-ray)을 처방했으나, A씨는 임산부라는 이유로 의료진의 수차례 권유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의료진들이 응급실 내의 초음파기기로 A씨의 쌍태아심박동을 확인한 뒤, 태아심음 모니터링과 진통억제를 위해 분만실 입원이 필요하다며 설명하고 입원장을 발부했음에도 A씨는 현재 자신은 산과보다 호흡기 쪽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일반 병실이 아니면 퇴원하겠다며 분만실 입원을 거부했다.
결국 A씨는 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나서야 흉부 방사선촬영에 동의했고, 촬영 결과 울혈성 심부전 및 폐부종이 의심되는 증세가 확인돼 조치에 들어갔다. A씨는 응급제왕절개술을 받았지만 쌍둥이 중 한 아이는 분만 당시 이미 사망했고, 한 아이는 신생아 가사 상태였다. 이후 상태가 호전된 A씨는 X병원에서 퇴원했지만, 가사 상태로 태어난 아이는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A씨 측은 △ A씨가 심한 호흡곤란 등으로 내원했을 당시 X병원 의료진들이 원인을 밝히기 위해 방사선촬영 검사 등을 실시했어야 함에도 게을리 했고, △ 응급실에서 바로 산과 진료를 시작해 신속히 제왕절개를 실시하지 않아 쌍태아가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X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환자는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한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의해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의료진이 권유하는 진료를 동의하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지만 의학지식이 미비한 상태에서는 실질적인 자기결정을 하기 어렵다"며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 진료의 내용 및 필요성, 예상되는 위험성과 함께 진료를 받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위험성 등 합리적인 사람이 진료의 동의 또는 거절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료진의 설명은 의학지식의 미비 등을 보완하여 실질적인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환자가 이미 알고 있거나 상식적인 내용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고, 환자가 위험성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 진료를 거부한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설명을 하지 아니한 데 대하여 의료진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환자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지 여부는, 해당 의학지식의 전문성, 환자의 기존 경험, 환자의 교육수준 등을 종합해 판단할 수 있다"며 "A씨는 내원 당시 호흡곤란 등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한 기초검사인 흉부 방사선촬영부터 본인이 수회 거절했고, 경력 10년의 간호사인 A씨로서는 이 같은 검사를 하지 못해 호흡곤란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산모 및 태아의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환자에 대한 의사의 설명의무를 인정하면서도 환자가 이미 의료지식이 많은 환자였다면 그 환자의 지식 수준에서 의사가 권하는 진료의 내용과 위험성 등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설명하면 충분하고, 같은 설명이 그 환자보다 의료지식이 낮은 다른 환자에게 했을 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해도 그 사실만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설명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 판결 팁= 의사의 환자에 대한 설명의무란 의사가 의료행위를 함에 있어서 환자에게 질병의 증상, 진료의 필요성, 진료 방법, 진료에 따르는 위험과 예후 등을 설명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의사의 설명의무는 법에 명시된 의무가 아니라 판례에 의해 인정된 진료계약상의 부수 의무이다.
이번 사례에서 대법원은 의사 측의 설명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의사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매우 많다.
이 때, 대법원은 의료행위와 관련한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에 대한 입증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의사로서는 적어도 환자에게 설명한 내용을 문서화 해 보존해야 한다"며 "의사가 문서에 의해 설명의무를 이행했음을 입증하기는 매우 쉽지만, 환자가 설명의무가 이행되지 않았음을 밝히기는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의료 분쟁에서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 여부는 하나의 쟁점이다. 의사로서는 진료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설명에 상당한 배려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며, 진료기록에 환자에게 설명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해 환자 측의 확인을 받아두는 것이 안전하다. 우리 법원은 이미 인쇄가 돼 있는 수술동의서에 환자 측의 서명 날인을 받은 것만으로는 의사가 설명의무를 이행했다고 보지 않는 만큼, 의사는 환자에게 직접 구두로 설명을 한 뒤 확인을 받아야 한다.
◇ 관련 규정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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