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교통·보험판결

버스 출발때 넘어져 다친 승객…"운전기사 책임아냐

학운 2016. 6. 2. 13:48
흔들리는 버스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넘어질 뻔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 쯤 해봤을 것이다. 이때 넘어진 승객이 다친다면, 승객 본인의 과실일까, 버스 운전기사의 과실일까?

이와 관련해 출발하는 버스에서 넘어진 승객이 부상을 당했어도 버스운전사가 그 부상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결(92도56)이 있다.

시내버스 운전기사 A씨가 운전하던 버스는 따로 승객들의 승하차를 관리하는 안내 직원을 두지 않았고, 승객들은 버스 뒷문으로 승차해 앞문으로 하차하도록 운행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A씨가 운전하던 버스를 타고 있던 승객 B씨는 하차를 위해 앞문 쪽으로 걸어 나오다 버스가 출발하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져 부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버스에는 40명 정도의 승객들이 타고 있었고, 그 중 15명 가량은 버스 앞쪽에 서 있었기 때문에 운전석에 앉은 A씨는 뒷좌석 쪽에 앉아 있던 B씨를 보지 못한 상태였다. B씨는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해 다른 승객 4명이 이미 앞문을 통해 하차하고 난 이후에 뒤늦게 하차하려했고 이를 보지 못한 채 A씨가 버스를 출발시켜 넘어졌던 것이다.

검사는 승객의 안전 상태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버스를 출발시켜 승객으로 하여금 부상을 입게 한 버스 운전기사 A씨에게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 과실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승하차를 관리하는 안내 직원이 없는 시내버스의 운전사는 버스정류장에서 일단의 승객을 하차시킨 후 다른 움직임이 없으면 차를 출발시키는 것이 통례다"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운전사에게 착석한 승객 중 더 내릴 손님이 있는지, 출발 도중 넘어질 우려가 있는 승객은 있는지 등의 여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할 주의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씨가 하차하려다 넘어진 버스정류장으로부터 다음 정류장인 종점까지의 거리는 50~60m 정도로 가깝다"며 "평소 종점에서 내리기 위해 미리 일어서는 사람이 많았고, 운전사 A씨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버스를 급발진시키지 않고 통상적으로 출발시킨 A씨에게 과실은 없다"고 판단했다.

버스운전사로서는 이미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해 4명의 승객이 내릴 동안에도 좌석에 앉아 있다가 뒤늦게 내리기 위해 별도의 의사표시를 하지도 않고 무작정 앞문을 향해 걸어나오는 승객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감안해 버스를 출발시키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 판결팁= 이번 사례는 버스가 통상적으로 출발을 하면서 흔들리는 정도로 승객이 넘어진 경우에 대한 판결이다.

하지만 사안을 조금 달리하여 버스가 운전사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급발진'으로 인해 흔들렸고, 이로 인해 승객이 넘어져 부상을 입은 경우라면 법원의 판단도 달라졌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급발진이 원인이 되어 승객이 부상을 입은 경우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운전사가 승객의 피해에 대해 주의의무를 위반한 책임을 부담하게 됨이 당연하다.

이번 사례에서 대법원이 버스운전사에게 주의의무를 위반한 과실 책임이 없다고 한 것은 통상 정류장에서 승객을 내려주기 위해 잦은 정차와 출발을 반복해야 하는 버스운전사가 빈번히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승객들의 움직임까지 미리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며, 이런 의무를 지우는 것은 운전사에게 지나친 부담을 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사례에서는 '운전기사가 버스를 급발진시키지 않고 통상적으로 출발시켰다'는 점이 판결의 근거였음을 주의하여 사안을 잘못되게 확대 해석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관련 조항
형법
제268조(업무상과실 중과실 치사상) 업무상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자는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