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미·사우디, 42년 만에 ‘숨겨진 밀약’ 증거 드러나
ㆍ외교전문·당시 참여자 인용…블룸버그 ‘1974년 협상’ 보도
1974년 6월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사우디 제다 공항에서 파이잘 빈 압둘아지즈 국왕과 대화하며 걷고 있다. AP 자료사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숨겨진 밀약이 42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사우디가 넘쳐나는 오일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들여 미국 재정을 받쳐주기로 미 정부와 사우디 왕실이 밀실 협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 석유를 들여오면서 오히려 달러를 거둬들이는 희한한 거래로 이득을 챙겼다. 사우디는 이 협상 자체를 비밀에 부치는 대신 미국 무기를 사들이고, 미국을 왕실의 후원자로 묶어두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협상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31일(현지시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있는 외교전문과 1974년 협상에 참여한 제럴드 파스키 전 재무장관 보좌관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미국은 안전보장을 해주고 사우디는 돈을 댄다는, 두 나라의 긴밀한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밀약이 있었음이 문서와 증언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협상은 1974년 7월 윌리엄 사이먼 당시 미 재무장관이 유럽·중동 출장 중 사우디 제다에 나흘간 머무는 사이에 이뤄졌다. 외부에는 의례적인 외교순방이라고 했으나 사이먼에게는 사우디 왕실을 설득해 미 국채를 사들이겠다는 확답을 받아내는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빈손으로 돌아올 생각을 아예 말라”고 할 정도였고 협상단도 죽기살기로 임했다고 파스키는 전했다.
당시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사우디 등 아랍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급격히 줄인 1차 오일쇼크 직후였다. 미국의 의도는 비밀 협상으로 이 시기 미국 경제를 급속히 위축시킨 재정위기를 타개하는 동시에, 소련으로 향할지 모르는 오일머니의 흐름을 막는 데 있었다. 사우디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왕실은 겉으로는 아랍의 맏형을 자처하면서, 이면에서는 미국과 몰래 손잡고 돈을 대주며 ‘보험’을 들었던 것이다. 협상은 성공적이었고, 두 나라의 밀월관계는 40년 이상 유지됐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의 공생관계는 최근 깨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화해에 적극 나서자 사우디는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기름값이 떨어져 사우디가 재정난을 맞은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우디가 보유한 미국 국채 문제가 미 정치권의 이슈가 됐다. 블룸버그는 미 재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3월 현재 사우디의 미 국채 보유액이 1168억달러(약 139조원)에 이른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사우디가 가진 미국 국채 규모가 공개된 건 사상 처음이다.
17일에는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이 사우디 왕실을 고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미 상원이 통과시켰다. 백악관은 사우디와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양국 관계를 봉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ㆍ외교전문·당시 참여자 인용…블룸버그 ‘1974년 협상’ 보도
![](http://imgnews.naver.net/image/032/2016/05/31/l_2016060101000041400332381_99_20160531224108.jpg?type=w540)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숨겨진 밀약이 42년 만에 세상에 알려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사우디가 넘쳐나는 오일달러로 미국 국채를 사들여 미국 재정을 받쳐주기로 미 정부와 사우디 왕실이 밀실 협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사우디 석유를 들여오면서 오히려 달러를 거둬들이는 희한한 거래로 이득을 챙겼다. 사우디는 이 협상 자체를 비밀에 부치는 대신 미국 무기를 사들이고, 미국을 왕실의 후원자로 묶어두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협상이었다.
블룸버그통신은 31일(현지시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청에 있는 외교전문과 1974년 협상에 참여한 제럴드 파스키 전 재무장관 보좌관의 말을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미국은 안전보장을 해주고 사우디는 돈을 댄다는, 두 나라의 긴밀한 관계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는 밀약이 있었음이 문서와 증언으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협상은 1974년 7월 윌리엄 사이먼 당시 미 재무장관이 유럽·중동 출장 중 사우디 제다에 나흘간 머무는 사이에 이뤄졌다. 외부에는 의례적인 외교순방이라고 했으나 사이먼에게는 사우디 왕실을 설득해 미 국채를 사들이겠다는 확답을 받아내는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빈손으로 돌아올 생각을 아예 말라”고 할 정도였고 협상단도 죽기살기로 임했다고 파스키는 전했다.
당시는 1973년 4차 중동전쟁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사우디 등 아랍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량을 급격히 줄인 1차 오일쇼크 직후였다. 미국의 의도는 비밀 협상으로 이 시기 미국 경제를 급속히 위축시킨 재정위기를 타개하는 동시에, 소련으로 향할지 모르는 오일머니의 흐름을 막는 데 있었다. 사우디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졌다. 왕실은 겉으로는 아랍의 맏형을 자처하면서, 이면에서는 미국과 몰래 손잡고 돈을 대주며 ‘보험’을 들었던 것이다. 협상은 성공적이었고, 두 나라의 밀월관계는 40년 이상 유지됐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의 공생관계는 최근 깨지고 있다. 미국이 이란과의 화해에 적극 나서자 사우디는 미국 국채를 매각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기름값이 떨어져 사우디가 재정난을 맞은 것도 한 요인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우디가 보유한 미국 국채 문제가 미 정치권의 이슈가 됐다. 블룸버그는 미 재무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3월 현재 사우디의 미 국채 보유액이 1168억달러(약 139조원)에 이른다고 지난 16일 보도했다. 사우디가 가진 미국 국채 규모가 공개된 건 사상 처음이다.
17일에는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이 사우디 왕실을 고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미 상원이 통과시켰다. 백악관은 사우디와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진 양국 관계를 봉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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