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신빙성 의심되는 진술만 가지고 피고인 추행죄 단정하기 어렵다”

학운 2017. 12. 13. 07:03


대법, 유죄 원심 깨고 파기 환송/“피해자 어머니가 지켜보는데 유아 추행… 매우 이례적 상황”

A(57)씨는 최근 아동 성범죄 전과자가 될 뻔했다가 대법원 상고 끝에 법원의 판단을 다시 받아볼 기회를 얻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5년 8월 대낮에 A씨는 여성 B씨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던 B씨의 당시 두 살배기 딸 C양에게 사탕을 건넸다. 그러고 나서 “안녕, 우리 악수할까. 몇 살?”이라고 물으며 C양의 손을 잡았다. “아, 예쁘다”고도 했다.

B씨는 이내 딸의 손을 빼내려 했다. 그 과정에서 A씨는 C양의 가슴을 강제로 만진 혐의(성폭력처벌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C양의 가슴을 만지지 않았고, 손이 C양의 몸에 닿았다 해도 C양에게 말을 시키면서 닿았을 뿐 추행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다만 B씨의 신고로 사건 당일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가슴 부위를 건드렸다”고 했다가 검찰에서는 “가슴이 아닌 어딘가”라고 하는 등 진술을 번복했다.

유일한 목격자인 C양 어머니 B씨는 A씨에게 “뭐 하는 거냐”며 A씨의 손을 때려 딸의 손을 떼어 놓았고, “이건 아닌 것 같아 경찰에 신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1심은 B씨 진술에 일관성과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A씨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을 명령했다. C양이 언어적 표현 능력이 부족해 저항하지 못했다 해도 A씨 행위를 용인했다고 볼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A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2심은 A씨의 양형 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원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런 법원의 판단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10월31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에 내포된 무죄 추정의 원칙은 우리 형사법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며 “공소 사실에 부합하는 직접 증거는 B씨 진술이 유일한데, 낮 시간대 공공장소에서 피해자 어머니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유아를 추행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서 신빙성이 의심되는 B씨 진술만을 근거로 피고인이 공소 사실과 같이 피해자를 강제 추행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1·2심과 달리 B씨 진술이 아닌 A씨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B씨 역시 사건 당일 경찰에 “A씨가 오른손으로 딸의 오른쪽 가슴을 잡았다”고 했다가 3개월여 뒤 검찰에는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한 채 딸의 왼쪽 가슴을 꼬집듯이 만졌다”고 하는 등 갈수록 A씨의 범행 수법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사람이 목격하거나 경험한 사실에 대한 기억은 시일이 지나면서 흐려질 수는 있으나 처음보다 오히려 명료해진다는 건 이례적인 점에 비춰 보면, B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이 있다”면서도 “피고인의 진술 변화는 추행을 부인하며 추행 의도가 아닌 신체 접촉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피고인의 일관된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A씨가 C양에게 “아, 예쁘다”고 한 데 대해서는 “2세의 어린아이에 대해 어떤 성적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B씨가 딸 C양의 팔을 잡아끌어 A씨 손이 C양 몸에 잠시 닿은 것으로 보이고, 그런 행위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고 선량한 성적 도덕 관념에 반하는 ‘추행’에 해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A씨의 추행 고의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A씨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은 오는 21일 서울고법 형사12부 심리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