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표=서울가정법원 |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접수되는 내용 중 '양육비를 양육자가 모두 부담한다'거나 '월양육비를 5000원으로 한다'는 식의 협의가 심심치않게 발견되고 있어요. 이혼만 조속히 하고 싶어 '자녀의 복리' 같은 다른 사항은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이들이 다수 있죠. "(2017 양육비 산정기준표 공청회 중)
함께 할 수 없어 이혼을 선택한 부부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혼 후에도 삶은 이어지죠. 이혼 후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자녀 양육일 겁니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11만건에 이르는 이혼 건수 중 49%, 절반 가량은 미성년 자녀를 둔 가정으로 조사됐는데요.
법은 이혼 후에도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함께 부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양육을 하지 않는 부모가 일정 비용을 주도록 하는거죠. 하지만 법원이 정한 양육비가 현실과 동떨어져 실제 아이를 키우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이어져왔습니다.
이같은 지적에 지난 18일 서울가정법원은 이혼 가정에 적용되는 자녀 양육비 산정 기준표를 개정했습니다. 지난 2012년 처음 양육비 산정 기준표를 공표한 뒤 세 번째 개정안인데요. 법원은 물가상승률 등 변하는 현실을 반영해 평균 5.4%를 높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이 정한 기준을 살펴볼까요? 법원은 부모 합산 소득을 9개 구간으로 나누고, 자녀 나이를 5개 구간으로 나눠 구간별로 적절한 양육비를 정했습니다. 이번 기준안에 따르면 부모 합산 소득이 199만원 이하일 때 0~2세 미만 자녀가 있다면 월평균 53만2000원이 표준양육비로 책정됩니다. 부모 소득이 많을수록, 자녀 나이가 많을수록 양육비는 이에 비례해 오릅니다. 부모 합산 소득이 900만원 이상이면서 자녀가 15세 이상 18세 미만일 경우 239만5000원 이상이 표준양육비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부모 합산 월소득이 500만원이고 만7세 자녀를 뒀다면 표준양육비는 월평균 113만6000원이 됩니다. 양쪽 부모가 모두 소득이 전혀 없으면 어떨까요? 그래도 양육비의 일부를 부담해야 합니다. 법이 정한 최저 부담액은 월 21만9000원(자녀나이 0~2세일 경우)으로, 소득이 없어도 부모라면 이정도 양육비는 부담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어떤가요? 충분해 보이시나요? 그런데 이 금액은 양육 부모가 비양육 부모에게 받을 수 있는 양육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양쪽 부모 소득에 비례해 분담하게 되는데요. 양육 부모 소득이 200만원이고, 비양육 부모 소득이 300만원이라면 양육 부모는 표준양육비 113만6000원 중 60%인 68만1600원을 비양육 부모에게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혼전문 변호사들은 이같은 양육비 기준이 여전히 비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이혼전문 A 변호사는 "실제 아이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이보다 훨씬 많은데 소득에 따라 나누고 나면 실제 받는 양육비는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양육을 위해 직장생활도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기계적으로 나누다보니 이에 대한 고려는 부족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미성년 자녀에게만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는 것 역시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A 변호사는 "양육비는 미성년자녀, 즉 만 18세 자녀까지만 지급하도록 돼있어 성년이 되면 지원이 끊기는데 대학 학비 등 자녀 취업 전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이 현실"며 "정해놓은 규정이 없어서 성인이 된 후 더 힘들어하는 가정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실 양육비 기준이 현실화된다고 해도 못받으면 다 소용없는 일일겁니다. 변호사들은 법원에서 양육비 지급 판결을 받고도 주지 않고 버틸 경우 받아내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만들었는데요.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한 법적 절차 등에 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곳이죠.
하지만 건강가정진흥원이 공개한 '양육비 이행 모니터링 내역' 자료에 따르면 개원 후 지난 9월까지 소송을 통해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고도 주지 않는 이들이 5937건 중 절반이 넘는 3540건(59.5%)에 달했습니다. 이때문에 양육비 지급을 미루는 '무책임한' 부모들에게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는 정부 또는 법원의 강제력을 높이는 방안도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또다른 이혼전문 B 변호사는 "실제 양육비를 안주고 '배째라' 식이다가 소송을 시작하고 나서야 지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 "소송 등을 통해 양육비를 받아낼 수는 있지만 개인이 소송을 해 받아내려면 시간과 비용의 문제 등 과정이 녹록치 않은 것이 현실"고 말했습니다.
정부도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다른 국가에서는 운전면허 취소, 여권발급 중지 등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강제 수단을 사용해 압박하고 있다"며 "실질적 양육비 지원이 이뤄지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출산은 이미 모두가 공감하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현실에 앞서 이미 태어난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 역시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일 겁니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부모의 이혼이 아이의 불행이 돼서는 안될 겁니다. 이들을 위한 좀더 촘촘한 사회적·법적 제도를 고민해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