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임대차상식

공소장일본주의 위배 논란...어떤 내용이길래

학운 2017. 4. 3. 00:48



박근혜 정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비선실세 최순실씨 등 핵심 피고인들이 형사법정에서 수사기관을 겨냥해 ‘공소장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 위배 주장을 펼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433억원대 뇌물공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부회장에 대한 첫 공판을 오는 7일 연다. 재판부는 그동안 세 차례의 공판준비기일을 가졌다.


형사재판은 유무죄를 다투는 검찰과 피고인 측이 공판준비기일을 통해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에 대한 조사방법을 논의한 뒤, 이후 정식 공판에서 쌍방이 증인신문을 거치며 각자의 주장을 입증하는 절차로 진행된다.


이 부회장 측은 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일본주의란 재판을 맡은 법관이 특정 선입관이나 편견을 미리 갖지 않도록 검찰이 형사사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때 범죄사실과 직접 관련된 내용만 공소장에 담아 제출하도록 한 형사재판의 원칙이다.


군사재판의 경우 군사법원법 296조 6항에 ‘공소장에는 재판관에게 예단(豫斷)을 하게 할 우려가 있는 서류나 그 밖의 물건을 첨부하거나 그 내용을 인용하지 못한다’고 이를 명문규정에 두고 있지만, 형사재판의 경우 법률상 근거는 달리 없다.


대법원 형사소송규칙 118조2항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구속 피고인의 경우 구속영장 관련 서류를 공소장에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서는 92쪽 분량, 그 중 3분의 1이 넘는 39쪽이 뇌물수수 혐의에 할애돼 있다. 형소법은 수사기관이 형사재판에서 사건에 대한 예단·편견을 낳을 염려가 있는 진술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증거로 다투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상단의 정의의 여신상/연합뉴스


대법원은 2009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공소장일본주의’가 우리나라 형사소송구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공소제기가 일본주의에 어긋났는지는 공판준비절차에서 점검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미 증거조사절차가 마무리돼 법관이 심증형성을 이룬 단계에서는 앞서 진행된 소송절차의 효력을 다툴 수 없다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특검이 공소장 각주에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사건 등을 적어넣은 것이 재판부로 하여금 선입견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씨 측도 재판과정에서 특검이 최씨와 박 대통령의 선거전략 논의나 차명폰 통화내역,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내용 등을 공소장에서 다룬 것이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 측 역시 4월 중순을 전후해 재판에 넘겨지면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삼성이 433억원대 뇌물공여(실제 수수액 기준 298억원대)에 나선 범행의 동기로서 그동안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다룰 필요가 있고, 미르·K스포츠재단을 ‘공동운영’한 것으로 지목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의사연락·공모관계 입증을 위해 필요한 간접사실이라는 입장이다.


법조계는 법원이 공소장일본주의 위배를 이유로 국정농단 사건 주요 피고인에 대한 공소제기가 잘못됐다는 결론(공소기각)을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관측한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 실체적 진실발견을 양보하더라도 공소장일본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는 견해는 대법원 내 소수의견으로 남았고, 다수는 공소장일본주의의 적용이 일정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견해를 지지했다.

일례로 내란음모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재판에서 이 전 의원 측은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가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결성경위, 활동내역이 장황하게 공소장에 담긴 것이 재판부의 예단을 부를 수 있어 위법하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구체적 혐의를 입증하는데 필요하다 맞섰고 법원도 증거물을 살펴본 뒤 판단할 문제라며 이 전 의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