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교통·보험판결

자살보험금 논란 금감원, 삼성·한화생명에 이례적 중징계 이유는

학운 2017. 2. 24. 07:06

금융감독원이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삼성·한화생명 2곳에 중징계, 교보생명에 경징계를 내렸다. 금감원이 금융사에 2014년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로 부과한 가장 강력한 제재다. 보험사들이 법적 근거를 들이밀며 강력 반발하는데도 금감원이 중징계 입장을 유지한 이유는 ‘약관’에 있다. 약관에 보험금을 주겠다고 적어놨으면 그대로 줘야 하는데 약관에는 예를 들어 ‘ABC’ 라고 써 있는데 실제로 고객에게 ‘BCD’로 지급해놨다면 그 자체로 보험업법 위반이라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은 23일 오후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재해사망특약의 자살보험금을 미지급한 삼성생명, 한화생명사에 대표이사 문책경고 및 재해사망보장 신계약을 판매할 수 없는 영업정지(삼성 3개월, 한화 2개월)를 내렸다. 교보생명의 대표이사에게는 주의적 경고로 경징계로 내렸고, 영업정지는 1개월을 받았다. 3개사에 대한 과징금 3억9000만원~8억9000만원이 부과됐다.

대표이사 문책경고의 경우 연임이 되지 않고 다른 금융회사에 3년간 재취업이 금지된다. 이때문에 이날 이사회를 통해 재선임이 된 김창수 삼성생명 이사와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의 연임이 불투명해졌다.

자살보험금 관련한 논란은 사법부의 2가지 판결에서 이슈가 됐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자살을 재해로 써놓은 약관대로 일반사망보험금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후 일부 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이 여전히 문제였다. 2016년 9월 대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보험사들은 대법원 판결과 어긋나게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을 지급하면 ‘경영진의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며 지급할 수 없다고 버텼다.

금감원은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삼성·한화·교보 등 생보사들에 중징계를 사전 통보하고 소명을 요구했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약관 준수 의무가 생기거나 금감원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지도한 시점을 계산해서 보험금을 일부 지급하겠다고 입장을 다소 선회했다.

그러나 금감원의 징계 의지는 강했다. 지난해 11월 이성재 금감원 보험준법검사국장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예를 들어 약관에 ‘ABC’ 라고 써 있는데 나중에 봤더니 고객에게 BCD로 지급해놨다면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이라며 “애초에 약관에 따라 지급하지 않아 명백한 보험업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원래 고객에게 줘야 하는 보험금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보험상품은 약관에 의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으니 보험업법 위반으로 행정 제재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금감원은 이날 제재심의위에서 “회사는 약관에 피보함자가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이 지급되는 것으로 기재하였음에도 해당 보험금을 고의적으로 지급하지 않았고 재해사망보험금 부지급 사유를 설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융소비자단체들도 “보험사들의 사기”라고 반발해왔다. 금융소비자연맹은 보도자료를 통해 “생명보험사가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음에도 이를 잘 모르는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하면 ‘자살은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일반론을 앞세워 일반사망보험금만을 지급해왔다”며 이는 “명백한 사기행위”라고 비판했다.

금감원의 징계 의지가 강하자 교보생명은 지난 20일 미지급된 자살보험금 전체 건수에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급히 입장을 바꿨다. 이때문에 교보생명은 제재수위가 낮아졌다. 교보생명은 “소비자 신뢰 회복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고려한 것”이라며 미지급된 자살보험금 전체 건수에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오너인 신창재 회장의 연임 문제 때문에 급히 입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보험금청구 소멸시효 2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주지 않은 자살보험금 규모는 삼성생명 1608억원, 한화생명 1050억원 가량이다.

제재심의위는 금감원 수석부원장과 민간위원 6명 등으로 구성되며 이날 결정은 금감원장 결정을 통해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확정된다. 금융위원회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론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화생명은 “최종 제재심의위 결과에 대해서 현재까지 회사에서 통보받은 바 없다. 통보가 오게 되면 밀도 있는 검토를 거친 후 최종 입장 밝히겠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