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이혼·상속판결

참은게 손해?… 별거 40년만의 혼인파탄 소송 패소

학운 2016. 12. 28. 09:02

법원 "3년 내 피해만 배상 가능, 동거녀가 남편 병간호 책임져 아내는 정신적 고통 받은것 없어"

 

80대 이모씨는 남편과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었다. 결혼 20년 차에 접어든 1970년대 중반 남편은 한동네에 살던 김모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1979년 무렵부터는 아예 집을 나가 동거를 시작했다. 이후 가족과 왕래가 없었던 남편은 1996년 직장암 진단을 받았고 신장 질환에 패혈증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4월 숨을 거뒀다. 이씨는 지난해 6월 남편과 동거했던 김씨를 상대로 '혼인 관계를 파탄시켰으니 3억원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고법 민사 12부(재판장 임성근)는 이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불법을 저지른 것은 맞는다고 봤다. 우리 법상 중혼(重婚)은 허용되지 않는데, 김씨가 이씨의 남편과 동거하면서 수십 년간 '사실혼 관계'로 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씨가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가 됐다. 손해배상 소송에선 피해자가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안 시점으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내야 배상을 받을 수 있다. 이 사건에서 이씨가 입은 손해는 남편의 동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입은 정신적 고통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동거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손해다. 따라서 이씨가 소송을 낸 2015년 6월부터 역산(逆算)해 3년이 넘은 부분은 소송 제기 시한이 지나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최근 3년간의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 과정에서 이씨 남편의 병간호를 김씨가 맡았고, 장례도 김씨와 그 자식들이 치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사실상 부부 생활이 파탄된 상태여서 김씨가 이씨 남편과 동거한 것이 이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