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전 금융권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업권별로 보험회사가 시장금리 상승 위험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50여개 보험사 중에서도 한화생명과 흥국생명, 한화손보, 흥국화재 등 4개사의 위험도가 가장 높다고 판단했다. 특히 한화생명은 2년여 전 회계분류상 만기보유채권을 매도가능채권으로 옮기는 바람에 금리가 1%포인트 추가 상승하면 4조원대 채권평가 손실이 날 것으로 추정됐다.
21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은행·증권·보험사를 상대로 금리 인상 시나리오별로 각 금융회사의 위험 노출 정도를 측정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했다. 이 결과 다른 업권에 비해 채권을 많이 보유한 보험회사가 금리 상승으로 인한 채권 평가손실이 크게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생명보험사 ‘빅3’ 중 하나인 한화생명이 시장금리 상승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것으로 나왔다. 최근 국고채 3년·5년·10년 금리가 지난 9월말 대비 평균 60bp(0.6%포인트) 오르면서 한화생명은 이미 약 1조3000억원 가량의 채권 평가손실을 봤다. 여기에서 시장금리가 1%포인트 추가 상승할 경우 평가손은 지난 9월말 대비 4조원대로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화생명이 보유한 매도가능 금융자산은 총 58조원 가량인데 4조원대의 채권 평가손이 나면 보험금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이 120~130%포인트 추락할 것으로 관측된다. 한화생명의 지난 9월말 RBC비율은 289.8%다. 채권 평가손만 변수로 넣으면 RBC비율이 160%대로 하락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RBC비율 150% 이상을 유지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한화생명이 금리 상승에 취약해진 것은 2014년 11월에 회계상 채권 계정을 만기보유에서 매도가능으로 재분류 탓이 크다.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받아 채권과 주식에 투자하는데 이를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만기보유로, 중간에 매도할 경우 매도가능으로 분류한다. 한화생명은 2년전 만기보유채권을 모두 매도가능으로 재분류했다.
금리 하락기에는 보유채권을 시장가치로 평가하는 매도가능으로 분류하면 채권 가치 상승으로 RBC비율이 오른다. 실제로 한화생명은 2년전 채권 계정 재분류로 80%포인트 이상의 RBC비율 상승효과를 봤다. 반면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서 매도가능채권은 가치가 하락해 평가손이 발생하고 RBC비율이 떨어지게 된다. 채권 계정은 재분류한지 2년이 지나야 바꿀 수 있다.
이에 한화생명은 내년 1월에 매도가능 채권 중 일부를 다시 만기보유 채권으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최대한 금리 상승 위험에 덜 노출되도록 방어하기 위해서다. 다만 한번 매도가능으로 분류된 채권은 만기보유로 되돌려도 원가가 아닌 재분류 시점의 시가로 반영해야 한다. 계정을 다시 분류한다고 RBC비율이 개선되지는 않고 추가적인 금리 상승 위험만 방어할 수 있을 뿐이다.
한화생명은 이달 말 2000억원 이상의 변액보험 보증준비금도 쌓아야 해 일각에선 RBC비율 200%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한화생명은 내년 1분기에 50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는 등 RBC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RBC비율 상승 효과를 누리려 최근 2년간 채권을 재분류한 보험사는 11곳이다. 지난해 2분기에 계정을 재분류한 흥국생명은 금리가 1%포인트 추가 상승하면 RBC가 약 60%포인트 가량 하락하고 지난해 4분기에 계정을 재분류한 ING생명은 RBC비율이 180%포인트 급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채권 평가손 요인만 고려할 경우 생보사 4곳, 손보사 6곳이 금감원이 권고하는 RBC비율 150%를 지키지 못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금감원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은행권의 경우 채권 평가손이 3조원대로 나왔으나 금리 상승에 따른 순이자마진(NIM) 상승 효과로 BIS(국제결제은행)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소폭 하락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의 경우 1~2곳이 시장금리 상승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