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직후 서울대병원을 찾았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이현의 신경과 전문의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백씨가 병원에 실려온 직후 가족들로부터 초기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백씨를 진찰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컴퓨터단층촬영(CT·시티) 검사 등의 소견을 볼 때 외상성 뇌출혈로 이미 소생의 가능성이 없다고 진단했다. 퇴원을 권유할 정도였다”
그러나 최선의 치료를 다해보자는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가족의 동의를 받아 수술을 했고, 백씨는 혼수상태에서도 인공호흡기 등의 연명치료를 받으면서 300여일을 버텨온 것이다. 이현의 전문의는 이후에도 서울대병원을 몇 차례 찾아가 백씨의 상태를 파악했다. “의식불명 상태로 투병하는 과정에 감염을 막기 위해 항생제를 처방하거나 소변이 나오도록 이뇨제 등을 많이 썼다. 신장이 크게 손상돼 지난 7월부터 신장이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신부전이 나타났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신장 기능에 이상이 없었지만, 오랜 기간 항생제 등의 약물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신부전이 합병증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부검 논란의 불씨를 키운 건 고인의 사망진단서다.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에는 ‘사망의 종류’ 가 ‘병사’로 기록돼 있다. 급성경막하출혈(외상성 뇌출혈)을 앓다가 급성 신부전이 생겼고 결국에는 심장과 폐기능이 멈춘 ‘심폐정지’로 사망했다고 본 것이다. 얼핏 보면 틀린 점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의사들 스스로 만들어 2015년 3월 발표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을 보면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지침을 보면, 사망의 종류는 크게 병사와 외인사로 나뉜다. 외인사는 교통사고, 중독, 추락, 익사, 화재 등으로 사망한 경우를 가리킨다. 특히 사망 원인이 질병일 경우에도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 또는 타살일 수 있음을 주의하라고 돼 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 손상의 합병증으로 사망한 경우 병사를 선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도 명시돼 있다.
의과대학에서 법의학 강의를 몇 시간 듣는다고 사망진단서를 잘 쓰기는 어렵다. 사망진단서를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는 건, 의사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고인의 사망진단서는 그를 정성들여 진료해 온 주치의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포함해 서울대병원 의료진들은 최선의 진료를 다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껏 최선의 진료를 한 의료진이 의학계의 지침과 다르게 사망진단서를 기재한 이유를 현재로선 알 도리가 없다. 의사의 양심에 반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지 않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