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들, 승소 유리한 美·獨법원에 몰려
"한국, 국제재판부 신설땐 향후 1조 경제효과"
◆ 레이더L / 글로벌 특허전쟁 ◆
오는 7일 대전에서 열리는 '2016년 국제 특허법원 콘퍼런스'는 전 세계 유력 특허법원 법원장들과 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유일무이한 행사다. 올해는 미국 특허소송의 상징인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의 론 클라크 법원장, 로드니 길스트랩 판사 등 특허법 분야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번 행사는 세계 500조원 규모의 지식재산권(IP) 분쟁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특허법원과 전문가들이 쏟은 노력의 결실이다. 한국 법경제학회 분석에 따르면 한국 특허법원에 영어를 전용하는 국제 재판부를 신설하면 경제적 효과는 향후 5년간 1조16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방 혁신도시나 관광단지 조성 때 경제유발 효과가 1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이와 맞먹는 '지역경제 살리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35회째를 맞은 레이더L은 국제 특허법원 콘퍼런스를 계기로 세계 지식재산권 분쟁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의 속내를 살펴보고 한국 특허법원의 경쟁력을 가늠해봤다.
지난달 24일 미국 텍사스 동부 연방지방법원은 삼성전자가 임페리엄사의 카메라 특허를 "엄청나게(egregious) 침해했다"며 총 2100만달러(약 232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배심원들이 정한 배상액 700만달러(약 77억원)보다 3배나 많은 액수다. 임페리엄사가 "삼성이 자사의 카메라 이미지 센서를 베끼고도 허위 증언으로 이 사실을 감추려 했다. 배상액을 더 무겁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법원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삼성전자에 징벌적 의미의 배상금을 물린 이 법원은 인구 10만명의 작은 도시인 타일러에 위치해 있다. 비록 도시는 작지만 전 세계 특허소송의 최전선에 있는 만큼 그 결과에 각국 기업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곳에서 패배의 쓴맛을 봐야 했다. 삼성과의 악연도 처음은 아니다. 6개월 전인 올해 2월에도 삼성전자는 특허전문회사 렘브란트의 블루투스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텍사스 법원으로부터 1570만달러(약 173억원)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 거점 법원이 글로벌 산업지도 뒤흔들어
지난해 기준 미국 전역에서 제기된 특허소송의 43%가 텍사스 동부지법에 집중됐다. 특허소송이 일부 법원에 몰린다는 것은 기업들이 그만큼 특허권에 사활을 걸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재판소를 찾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기술 소유권이 누구에게 속하는지에 따라 글로벌 산업 경쟁구도가 좌지우지되니 국경을 뛰어넘어 승소에 유리한 재판소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한국 특허(IP) 허브국가 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인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는 "특허소송은 어느 법원이 재판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는지 소문나는 순간 전 세계 기업들이 몰려든다는 특징이 있다"며 "텍사스는 특허소송이 밀려든 덕분에 법원 주변에 판사, 변호사 숫자만 많아진 게 아니라 호텔, 음식점, 비행기 등이 호황을 누리고 수많은 일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전체 소송의 50% 이상이 독일 뒤셀도르프와 만하임 법원으로 쏠린다. 뒤셀도르프는 신속한 가처분으로, 만하임은 7~8개월 안에 끝나는 본안 판결로 명성이 높다.
◆ '아시아 지역 거점' 향한 치열한 전쟁
미국 텍사스 법원, 독일 뒤셀도르프 법원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의 거점 특허법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글로벌 IP 분쟁해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연달아 설립한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의 특허법원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6월에는 "지난해 외국인이 원고로 참여한 민사소송 1심에서 63건 모두 원고가 승소했다"는 보도자료까지 내는 등 외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위한 시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박성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49·사법연수원 21기)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특허시장 규모가 워낙 작고, 중국과 일본은 시장은 크지만 아직 양국을 기피하거나 견제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은 사법부가 행정부에 예속돼 있고 일본은 워낙 폐쇄적인 국가라 공정성을 의심하는 기업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은 외국 기업 위한 법정 없어
1998년 문을 연 한국 특허법원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됐다. 한국 특허법원에 제기된 사건 가운데 30%는 일방 당사자가 외국인이다. 그러나 중국 등의 맹추격을 따돌리고 IP 허브가 되기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법절차를 영어로 진행하는 법정조차 없다 보니 외국인이 당사자인 사건 비율은 2012년 33.6%에서 2014년 29.4%로 오히려 줄었다. 김환수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49·21기)는 "한국 특허법원은 소송기간도 평균 5.9개월로 짧고, 판사들의 재판 역량과 법원 시설 등도 손색이 없지만 아직 국제적 접근성이 낮다"면서 "법정에서 영어가 통용되는 국제 재판부를 만들어 외국 특허권자들이 쉽게 소송을 내도록 문턱을 허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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