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채권채무·손배소송

빚 지지 않는 현명한 상속 이렇게

학운 2016. 3. 3. 22:53

재산이 빚보다 많다면 ‘단순승인’

단순승인 상속은 가장 일반적인 상속방식입니다. 상속인이 재산과 빚을 모두 물려받습니다. 물려받을 재산이 빚보다 확실하게 많다면 이걸 택하면 됩니다. 빚을 다 갚고도 재산이 남기에 다른 고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원에 상속 단순승인 신청을 하거나, 사망 이후 석 달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단순승인으로 간주됩니다. 3개월 안에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행위를 해도 단순승인이 됩니다. 예컨대 사망한 남편의 퇴직금을 아내가 수령하는 행위도 재산처분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재산은 누가 받게 될까요? 재산분배를 명시한 유언장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유언장이 없다면 법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상속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자녀 및 손자녀 등 직계비속과 배우자가 최우선 순위입니다. 자녀가 없다면 부모 등 직계존속에게 상속이 넘어갑니다. 이때도 배우자는 직계존속과 함께 공동상속인 지위를 가집니다. 자녀도 부모도 배우자도 없는 경우라면 그 다음 순위는 형제·자매가 됩니다. 제일 마지막은 4촌 이내 방계혈족까지입니다.

빚이 많다면 ‘상속포기’ 가능한데…

문제는 빚이 더 많을 때입니다. 단순승인을 하면 남겨진 빚을 유족이 다 갚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상속포기’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재산도 빚도 모두 포기하는 겁니다. 상속이 개시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 신청을 법원에 내야 합니다. A씨가 빚만 남긴 채 사망했다면 1순위 상속인인 자녀 B·C·D씨와 A씨의 배우자가 사망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 신청서를 내는 식입니다.

하지만 채권자가 권리를 쉽게 포기할 리 없겠지요. 1순위 상속인들이 모두 상속포기를 했다면 채권자는 2순위 상속인들을 찾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그들마저 포기한다면 그 다음 순위 상속인을 찾아갑니다. 결국 제일 마지막 순위에 있던 사촌까지 빚 독촉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오래전 사망한 사촌이 빚을 남겼으니 갚으라는 얘기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요.

법무법인 새올의 이현곤 변호사는 “1998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빚 받으러 사촌까지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의 채권추심 등이 강화되면서 상속을 포기하는 문제도 함께 복잡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채권자 찾아와도 놀라지 마세요

그렇다고 가족끼리 얼굴을 붉히진 맙시다. 지난해 5월 대법원 판례를 보면 방법이 보입니다. B업체는 평소 고철 거래를 해오던 C씨(여)에게 2009년 10월 6억원을 빌려줬습니다. C씨는 이듬해 8월 사망했습니다. C씨에게는 남편과 두 자녀가 있었는데, 1순위인 두 자녀는 상속을 포기해버렸습니다. 그러자 B업체는 두 자녀의 자녀들, 즉 C씨의 손자와 손녀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대법원의 결론은 C씨 손자녀들과 C씨 남편이 빚을 공동으로 상속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속순위에 따른 당연한 판단입니다만 열 살 남짓한 미성년자들이 난데없이 할머니의 빚을 떠안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단서를 달았습니다.

대법원은 “일반인 입장에서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 자신들의 자녀가 공동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까지 안다는 것은 오히려 이례에 속한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상속순위에 관한 법률이 워낙 복잡해서 후순위 상속인은 자신이 상속인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대법원이 인정한 셈입니다. 때문에 C씨 손자녀와 같은 경우 상속개시 시점을 대법원의 선고가 난 날을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고 봤습니다. 3개월이라는 시간과 상속을 포기할 기회를 준 셈입니다.

그래서 요즘 대세는 ‘한정승인’

비록 대법원 판례와 같은 안전장치가 있지만 상속포기는 영 깔끔하지 않습니다. 분란을 방지하게 위해 상속포기서를 들고 사촌까지 쫓아다니며 서명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요즘은 한정승인이라는 제도를 많이 이용합니다. 한정승인은 물려받은 재산 내에서 빚을 갚는 것을 말합니다. 상속 재산이 1억원이고, 상속 빚이 2억원일 때 재산 1억원으로 빚 1억원만 갚는 겁니다. 반대로 재산이 2억원이고 빚이 1억원이면, 남은 1억원을 상속받게 됩니다. 빚이 얼마인지 잘 모를 때도 유용하겠지요.

이 역시 상속 개시를 알게 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법원에 한정승인을 신청하면 됩니다. 상속인이 여럿일 때는 1명이 대표로 한정승인을 내고, 나머지는 상속포기를 하거나 여러 명이 함께 한정승인 신청을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상속재산과 빚이 얼마인지 정리해서 함께 내야 합니다. 숨은 빚이 얼마인지 잘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는 데까지만 적으면 됩니다. 한정승인 결정을 받고 난 이후에도 법원에 신청해 경정(更正)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채권자가 갑자기 나타나면 해당 채무를 추가해서 경정 신청을 내면 됩니다. 아예 신문지면 아래쪽에 작게 한정승인 결정을 받았다는 공고를 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공고가 나간 뒤 2개월 안에 채권자가 나타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빚은 그대로 청산됩니다.

재산이 많은 줄 알고 단순승인을 했는데, 뒤늦게 빚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면 특별한정승인 제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빚이 더 많은지 모르고 단순승인을 했으니 지금이라도 한정승인을 하겠다”고 법원에 신청하는 겁니다. 빚이 재산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면 됩니다. 효력은 한정승인과 같습니다. 서울의 한 법원 판사는 “채권자 입장에서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느낄 수 있지만 한정승인은 부모의 빚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에서 도출된 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