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교통·보험판결

"중앙선 침범 운전자, 무조건 과실비율 100% 아냐"

학운 2016. 7. 1. 21:20



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은 경우 중앙선 침범 사고라고 해도 '신뢰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과실 비율에 따라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내리막길을 따라 차량을 운전하던 A씨는 과속으로 달리고 있었다. 반대편 길에서는 B씨가 아들인 C씨를 오토바이 뒷좌석에 태우고 느린 속도로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B씨가 운전하던 오토바이는 도로 중앙 가까이로 진행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반대차선으로 진입했고 A씨의 차량 왼쪽 앞 범퍼 부분과 오토바이의 앞부분이 충돌해 사고가 났다. 

교통사고가 난 장소는 약 30도 경사진 내리막길이었다. 길의 폭은 왕복 6.9m였지만 양쪽 길의 끝부분은 도로 표면보다 낮아 차량이 지나갈 수 없었다. 또한 도로 포장공사가 끝나지 않아 중앙선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이런 경우 사고의 책임은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도로의 상황에 비춰 상대방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운행하리라는 신뢰를 갖기는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B씨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며 A씨에게도 일부 책임을 인정했다. 도로의 사정이 나쁘다면 A씨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에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91다31227 판결)


신뢰의 원칙이란 교통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다른 운전자들도 교통 규칙을 지킬 것으로 믿으며 운전을 해도 된다는 원칙이다. 다른 운전자가 교통규칙을 위반하고 갑자기 중앙선을 넘는 것까지 미리 예상해 움직일 의무는 없다는 얘기다.


이 원칙에 따르면 상대 운전자나 보행자의 돌발 행동 때문에 사고가 일어난 경우 운전자는 면책된다. 중앙선 침범 사고의 경우 중앙선을 침범한 운전자의 과실 비율이 100%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대방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자기 차선으로 들어올 것까지 예상하고 운전해야 할 의무는 없다면서 신뢰의 원칙을 인정하긴 했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며 A씨에게도 일부 책임을 인정했다. 그 이유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는 도로의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도로는 내리막길에 길이 좁아 한쪽으로 피해서 운전할 수 없는 상태였고 중앙선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A씨는 평범한 상황과는 달리 운전할 때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도 그 의무를 소홀히 해 사고가 났단 얘기다.

대법원은 A씨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면서 B씨의 과실 비율을 70%로 정했다. B씨도 밤늦은 시간에 도로의 중앙선을 넘어 오토바이를 운전한 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중앙선 침범 사고에 있어 신뢰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에는 △ 도로의 상황이 불량한 경우 △ 차선 도색 작업을 하고 있는 경우 등이 포함된다. 도로의 상태가 불량한 경우에는 운전을 평소보다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중앙선에 가까이 운전하는 운전자들이 있다면 경고 신호를 보내 중앙선을 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판결팁= 중앙선 침범 사고가 났을 때 면책을 해주는 신뢰의 원칙은 도로의 상태가 불량한 경우나 차선 도색 작업을 하고 있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경우 상대 운전자가 중앙선을 침범하는 사고를 냈다고 하더라도 면책이 아니라 운전자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