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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세월호 보도 KBS국장에 “해경 비판 나중에” 압박

학운 2016. 6. 30. 22:31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한국방송>(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은 좀 지나고 나서 해달라”, “(보도를) 다른 걸로 대체를 하거나 말만 바꿔서 녹음을 다시 한 번 해달라”고 하는 등 한국방송 보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려 했던 말들이 담긴 통화 내용이 공개됐다. 그동안 문제로 제기됐던 청와대의 ‘보도 개입’이 당사자들의 육성으로까지 확인된 것이라 파문이 예상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단체들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 사이에 오간 두 차례 통화내용을 음성파일과 녹취록으로 공개했다. 김 전 국장은 2014년 5월 해임된 뒤 이 전 수석과 길환영 전 한국방송 사장이 수시로 한국방송 보도에 개입해왔다고 폭로한 바 있다.

통화내용을 들어보면, 이 전 수석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닷새 뒤인 4월21일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방송이)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뉴스를 내고 있다”, “솔직히 보도에 의도가 있어 보인다”, “한국방송이 저렇게 보도하면 전부 다 해경이 잘못해가지고 이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한다”, “(해경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면) 좀 지나고 나서 그렇게(비판을) 해야지” 등의 말을 했다. 그날 한국방송 <뉴스9>은 해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도 7건을 내보냈는데, 이에 대해 ‘해경 비판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김 전 국장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다” 정도로 무마하는 태도를 보였다.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전 수석은 4월30일에도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다. 그날 <뉴스9>에서는 해경이 해군의 잠수 작업을 통제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뤘는데, 이에 대해 이 전 수석은 “통제가 아니라 (투입될)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었다”며 “(해당 보도를) 다른 걸로 대체를 좀 해 주든지 아니면 말만 바꾸면 되니까 (해경 입장을 반영해) 한 번만 더 녹음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와중에 “또 세상에 (대통령이) 케이비에스를 오늘 봤네”라며 대통령의 심기를 신경쓰는 듯한 말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전 국장은 “조직이라는 게 그렇겐 안 되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 “(자정뉴스인) <뉴스라인> 쪽에 한 번 얘기를 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날 <뉴스9>에 나왔던 8건의 보도 가운데 ‘둘쨋날 밤 군 재투입, 황금시간 놓쳤다’ 리포트는 <뉴스라인>에서는 방송되지 않았다.

언론단체들은 이 통화내역이 과거 ‘보도지침’처럼 정부가 공영방송에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보도에 개입해온 실태를 명백하게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장은 “미국이나 영국, 일본이었다면 마땅히 정권 퇴진 요구나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야 한다는 비판이 터져나왔을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유경근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통화내용을 통해, 이 정부가 줄곧 ‘책임이 없고, 있더라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현재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강제 종료시키려고 하는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완수되지 않는 한 특조위는 종료될 수 없다”고 말했다.

언론단체들은 △특조위 활동 기한을 연장해 참사의 원인과 구조 활동 문제 등 진실을 밝힐 것 △세월호 언론 청문회를 열어 보도 통제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것 △검찰이 이 전 수석과 길 전 사장의 방송법 위반 혐의를 철저히 수사할 것 △국회가 나서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시급히 개선할 것 △박근혜 대통령이 보도 개입과 진실 은폐에 대해 사죄할 것 등을 요구했다. 언론노조 등은 김 전 국장이 이미 공개했던 자료들을 근거로 이 전 수석과 길 전 사장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