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술취해 여자후배 집에서 나체로 잠든 남자…주거침입 '무죄', 왜

학운 2020. 6. 23. 17:05

같은 대학원 여성 후배의 집에서 나체 상태로 잠들었다가 주거침입 혐의를 받은 30대 남성의 판결이 1심과 2심에서 엇갈렸습니다.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는데요. A씨의 유무죄를 가른 결정적 한끗은 무얼까요? 네이버법률이 엇갈린 판결을 되짚어 봤습니다.

◇다른 사람 집에서 나체로 잠든 남자…주거침입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주거침입 혐의로 기소된 A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1심의 판단을 뒤집은 건데요.

A씨와 B씨는 같은 대학원의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당시 B씨에게는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혼 관계의 남성인 C씨가 있었습니다.

A씨는 20188월 함께 술을 마시던 후배 B씨의 집에 함께 들어가 거실에서 전라 상태로 잠이 들었습니다. 같은 시간 안방 침대에서는 B씨가 자고 있었습니다. 원피스가 위로 말아올려진 상태로 말이죠.

그런데 우연찮게 C씨가 이 상황을 목격하게 됩니다. 집에 왔다가 나체의 A씨와 자신의 여자친구가 한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 어색한 장면을 보고만 거죠. C씨는 이 상황을 경찰에 신고합니다.

C씨가 처음 의심한 건 A씨와 B씨가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었습니다. 아울러 A씨가 B씨의 집에 침입한 것도 문제삼았습니다. A씨와 B씨는 로스쿨 선후배로 두달에 한번 만나는 정도의 친분관계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B씨는 C씨에게 '성행위 등 신체접촉은 없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후 안타까운 선택을 한 건데요.

결국 A씨와 C, 두 남성만이 남겨졌고 A씨는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A씨 측은 재판에서 "술에 취해 자신의 집으로 잘못 알고 들어가 잠이 들었을 뿐"이라고 항변하는데요.

형법
제319조(주거침입, 퇴거불응) ①사람의 주거, 관리하는 건조물, 선박이나 항공기 또는 점유하는 방실에 침입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전항의 장소에서 퇴거요구를 받고 응하지 아니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주거침입죄는 타인의 집에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가는 행위를 처벌하는 겁니다. 이번 사건에선 A씨가 B씨와 C씨가 살던 곳에서 나체로 술에 취해 자고 있었고 그 모습을 C씨가 발견해 신고하게 됩니다.

1심 법원은 A씨의 주거침입 혐의에 대해 유죄로 보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없었지만 타인의 집에 들어가 나체로 잠이 든 A씨의 행위 자체가 잘못된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심 법원은 1심 법원의 판단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A씨와 B씨 사이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없었다는 1심의 판단을 인정하면서도 최종 결론은 다르게 내렸습니다.

◇'만취상태' 고의 없어 주거침입 인정 안 돼

A씨는 오랜 자취 생활로 집에서 옷을 벗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건이 벌어진 날은 무더운 한여름이었고 A씨는 긴 팔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2심 법원은 "성행위 목적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A씨가 주거에 들어가기 전부터 옷을 벗고 잠을 자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A씨가 답답함을 느끼고 타인의 주거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평소 습관대로 옷을 모두 벗은 후 거실에서 잠이 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성인인 A씨가 타인의 집에서 만취해 나체로 잠이 든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이례적인 일을 벌이게 된 이유로 법원은 A씨의 주취상태와 평소 습관을 든 겁니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의 집인지 모르고 들어가 평소 습관대로 옷을 벗고 잠이 들었다고 본 거죠. 결국 2심 법원은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자야겠다는 고의가 없었기 때문에 주거침입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와 유사한 판례도 존재합니다. 20대 여성이 사는 오피스텔 방안에 들어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든 남성이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법원은 고의가 없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CCTV에 찍힌 이 남성의 모습은 술에 상당히 취한 상태였는데요. 그 상태로 20대 여성의 방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다가 집 주인의 신고로 체포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만취해 다른 사람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착각하고 들어가 잠을 자고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주거침입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인데요.

주거침입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일부러 타인의 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술에 취해 실수로 타인의 집에 들어가서 자게 된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결과적으로 고의가 없기에 처벌할 수도 없다는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