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수영장에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같이 설치해 운영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관리자 측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대법원은 어른용 수영장과 아이용 수영장을 물리적으로 분리하지 않은 점은 중대한 하자로 봐야한다고 판단했다. 법경제학 이론인 '핸드 룰'이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에 언급된 것인데, 향후 구의역 사고와 같은 안전사고를 둘러싼 소송에 변화가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8일 정모씨 등 4명이 성동구도시관리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정씨는 지난 2013년 7월 가족들과 서울 성동구 소재 수영장을 찾았다. 당시 만 6세였던 아들이 성인용 구역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고, 치료 후에도 사지마비 등을 진단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수영장은 수심 1.2m의 성인용 구역과 0.8m의 어린이용 구역이 함께 있었고, 두 구역이 로프로만 구분돼 있었다. 수영장 벽면에는 수심 표시도 돼 있지 않았다. 정씨는 수영장의 관리 하자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수영장을 관리·운영하는 공단을 상대로 약 3억2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에 나섰다.
1심과 2심은 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성인용 구역과 어린이용 구역을 물리적으로 구분해야한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해당 수영장 설치·보존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또 사고와 벽면에 수심 표시가 돼 있지 않았던 점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해당 수영장의 설치·보존상 하자가 있으며, 사고 발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하자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위험의 현실화 가능성의 정도, 위험이 현실화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침해되는 법익의 중대성과 피해 정도, 사고 방지를 위한 사전 조치에 드는 비용이나 조치를 함으로써 희생되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고 전제했다.
법경제학 이론인 '핸드 룰'을 통해 관리자 측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고 방지를 위해 사전 조치를 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사고 발생 확률과 발생할 경우 피해 정도가 더 큰 경우에는 공작물의 위험성에 비례해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위험방지조치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며 "관리자에게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법령 위반이 없다고해서 공작물 설치·보존상 하자 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를 물리적으로 분리함으로써 성인용 수영조에 어린이 혼자 들어가 물에 빠지는 사고 위험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심표시와 관련해서도 "법령을 위반한 것"이라며 "사고가 하자와 관련 없이 불가피했다고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수심표시와 사고 사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성인용 수영조와 어린이용 수영조를 분리하지 않고 수심표시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의 하자로 인해 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이상 피고에게 책임이 있다고 봐야한다"고 결론냈다.
한편 법원 판결문에 '핸드 룰'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법경제학에서 논의되는 핸드 공식을 실제 재판에 적용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핸드 룰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피해 비용 계산이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이번 판결에서도 실제 계산이 들어가지는 않았다"면서도 "위험물과 관련해 어떤 방지조치가 필요한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부연했다.
아울러 "(새로운 관점이) 어린이 수영장 뿐아니라 구의역 사고 등 산업재해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된다"며 "사고발생 위험성이 크고 사고가 나면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일정 비용이 든다해도 (안전물을) 설치하는 것이 위험물 설치관리자의 책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확정될 여지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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