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손님인 척 '위장수사' 하면 범인 잡아도 증거 인정 안된다

학운 2018. 11. 6. 08:17


경찰관 A씨는 '나이트클럽에서 남성무용수의 음란한 나체쇼가 계속되고 있다'는 국민신문고 민원이 제기되자, 다른 경찰들과 수사에 나섭니다. 경찰들은 민원이 제기된 나이트클럽에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가 남성무용수 B씨의 공연 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토대로 수사와 기소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2심에서 경찰들은 자신들이 촬영한 공연 영상이 증거능력이 없다는 결정을 받았는데요.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이 사건의 경과는 이렇습니다.
 
1심 재판부는 경찰에서 촬영한 영상을 증거로 나이트클럽 무용수 B씨와 종업원, 사장이 풍속 영업소에서 음란행위를 한 사실을 인정해 유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무용수 등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재판 결과가 뒤집혔습니다. 2심 재판부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이처럼 1심과 2심의 선고 결과가 180도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찰이 손님으로 가장해 나이트클럽에 잠입해 동영상을 촬영하고 이를 증거로 수사를 벌인 것을 과연 적법한 수사로 볼 것인지, 해당 동영상의 증거 능력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법원의 판단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1심 재판부는 경찰들의 수사가 적법하다는 전제로 영상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했고, 영상을 참고해 무용수를 비롯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경찰이 손님으로 가장해 증거를 수집한 행위는 '강제수사'라고 봤습니다. B씨를 비롯한 피고인들의 동의나 승낙 없이 피고인들의 직업 선택 및 수행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수반했고, 영장도 발부하지 않아 헌법과 형사소송법에서 규정한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2심 재판부는 경찰에서 제출한 영상을 적법한 수사 방법을 통해 수집한 증거가 아니라고 판단해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강제수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는 증거능력 인정 안돼
그렇다면 강제수사를 통해 수집한 증거는 무조건 위법으로 수집한 증거일까요? 이 사례에서 재판부는 경찰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공연을 촬영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촬영된 영상이 위법 수집 증거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다만 경찰이 사전 또는 사후에도 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이 증거를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와 수사 보고서의 증거능력은?
비록 동영상은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무용수 B씨를 비롯한 피의자들의 신문조서와 수사보고서에는 이들의 혐의가 분명히 기록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조서와 보고서는 법정에서 증거능력을 인정받았을까요

재판부는 피의자들의 신문조서와 수사보고서는  동영상과 현장사진에 기초해 획득한 경찰의 '2차적 증거'라고 봤습니다. 따라서 동영상을 기초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와 수사보고서 등의 증거능력도 모두 부정했습니다.

결국 경찰관들이 손님으로 위장해 촬영한 남성 무용수 B씨의 동영상은 증거능력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증거 부족으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면 불가피하게 신분을 속여야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위장수사의 적법성을 일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사에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거나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다면, 그 수사 과정에서 수집한 증거 능력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헌법
제12조 3항 ③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