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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택시보다 많이 벌어요"…쿱 택시의 질

학운 2016. 11. 22. 21:29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택시협동조합연합회 출범식에서 박계동 이사장(운전석 옆에서 둘째)과 우리사주 조합원들과 함께 팔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다./남강호 기자

포항에서 건설 자재업을 하던 정연욱(60)씨는 요즘 택시를 몬다. “불황으로 사업을 접고 전세금을 조금씩 까먹으며 살았죠. 그러다가 올 2월에 협동조합 택시인 ‘쿱(coop) 택시’라는 걸 알게 됐고, 용기 내서 핸들을 잡았습니다.” 정씨는 전세금이 바닥날 즈음 택시 협동조합 ‘쿱 택시’를 알게 돼 조합에 가입했고, 지금은 월 300만원 정도 번다. 법인 택시 기사의 평균 월수입이라고 알려진 120만~150만원보다 훨씬 많은 액수다.

한국의 첫 택시 협동조합인 ‘쿱 택시’는 지난해 7월 출범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원 비자금 사건을 폭로했던 ‘스타 정치인’ 출신 박계동(현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 전 국회 사무총장이 설립을 주도했다. ‘쿱 택시’는 그동안 다섯 도시로 확장했고, 22일엔 다섯 도시의 ‘쿱 택시’가 모인 한국택시협동조합 연합회가 출범했다. ‘쿱 택시’는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했을까. 포항의 예순 살 택시 기사 정씨는 그 이유를 묻자 한마디로 답했다. “기사가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택시 기사가 돈을 벌 수 있다고?”

서울에서 택시를 잡으면 가끔 병아리색 택시에 ‘coop’이라고 새겨진 택시를 볼 수 있는데 그 택시가 ‘쿱 택시’다. ‘쿱’은 ‘cooperative’를 줄인 말로 우리말로 ‘조합’이라는 뜻이다. 1년 4개월 전 서울에서 택시 75대로 시작한 ‘쿱 택시’는 택시 기사들 사이에 ‘기사가 돈 벌 수 있는 택시’라는 소문이 났고, 그 사이 전국 도시 5곳(서울·경주·대구·포항·광주)으로 번졌다. 택시 기사 약 600명이 전국적으로 택시 200여 대를 운영 중이다. ‘쿱 택시’ 임헌조 이사는 “내년 상반기엔 10여 도시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협동조합 택시는 조합 출자금(2000만~2500만원, 서울보증보험 보증 통해 대출 가능)을 낸 기사가 조합 지분을 보유하고, 수익을 조합원 사이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조합원이 회사의 ‘공동 주인’이 되는 셈이다.

일반 택시와 가장 큰 차이는 택시 기사가 돈을 버는 방식이다. 기존 법인 택시는 회사가 자동차를 기사에게 빌려주는 대신 ‘사납금’이란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가져간다. 보통 하루에 12만5000~14만5000원 정도를 택시 기사가 회사에 낸다. 나머지도 회사가 60%를 가져간다. 하루에 30만원을 벌면 택시 기사 손에 남는 돈은 7만원 정도다. ‘쿱 택시’ 기사는 돈을 버는 방식이 다르다. 매일 버는 돈을 일단 조합이 모두 모으고 월급 날(매월 10일) 기본급 130만원에 더해 영업 일수에 따라 월 10만~50만원 정도 수당을 받고, 남들보다 더 번 돈은 ‘초과금’이라는 명목으로 추가로 받는다. 조합은 연료비·보험료·운영비 등으로 사납금과 비슷한 금액을 가져가지만, 나머지 돈은 대부분 기사가 가져가기 때문에 실제로 받아가는 돈은 훨씬 늘어난다. 하루에 30만원씩 매출을 올리고 20일을 일한다면 법인 택시는 약 140만원, ‘쿱 택시’ 기사는 350만원 정도를 가져간다.

◇공유 경제 모델, 퀵·청소 서비스로도 확대

박계동 이사장은 “연합회가 출범하면 보험·대출 등 공제회 차원의 금융 서비스를 할 수 있다”며 “특히 택시 기사들을 위한 협동조합 차원의 저금리 대출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야크 은행’같이 최소한의 비용만 떼고 돈을 빌려주는 이른바 ‘무이자 은행’을 만드는 것이 박 이사장의 목표다.

‘쿱 택시’의 순항은 ‘부익부 빈익빈 경제’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공유 경제의 새로운 모델이란 평가를 받는다. 고려대 김균 교수는 “법인 택시 문제는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지만 택시 요금을 올리고 택시 대수를 줄이는 등 실행하기 어려운 해법만 제기돼 왔다”며 “‘쿱 택시’ 모델은 퀵서비스, 택배 기사 등 비슷한 문제가 있는 다른 분야로 확대될 잠재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쿱 택시’는 조만간 ‘쿱 퀵(서비스)’ ‘쿱 청소’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최근엔 택시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키르기스스탄 정부로부터 ‘쿱 택시 모델’을 정착시켜 달라는 요청도 받았다.

박계동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모든 기업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투자가 많이 필요한 자본·기술 집약적 산업은 대기업이 맡되, 노동 집약적 산업은 협동조합 모델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분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