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서울의 한 5성급 호텔에서 열린 국립대 직원 A(36)씨의 결혼식. 하객 400명에게 스테이크와 와인을 곁들인 1인당 13만원짜리 저녁 식사가 제공됐다. 호텔에 따르면 이날 결혼식 비용으로 모두 8030만원이 들었다.
호텔 관계자는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결혼식장에 화환이 줄어든 것 말고 변화는 없다"며 "오히려 혼주들이 '이참에 주변에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면서 전보다 더 고급 메뉴를 결정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공직자 등의 금품 수수를 근절하자는 취지의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비싼 식사 대접은 줄고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되는 추세다. 부정 청탁이나 민원이 줄었다며 반기는 곳도 많다. 하지만 유독 결혼식장만 이런 흐름에 역주행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은 '3·5·10(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기준을 넘는 식사 대접, 선물, 경조사비를 각각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결혼식 등 경조사 하객에게 접대하는 식사에는 '3만원' 한도가 없다. 경조사는 우리 사회의 전통 관습이고 사회 상규라는 이유다. 그 때문에 1인당 식사비가 10만원이 훌쩍 넘는 호텔 예식장은 여전히 손님이 넘치는 것이다. 비싼 식사를 대접받는 하객들은 "법이 정하는 상한선 10만원을 축의금으로 내야 한다"는 부담까지 생겼다.
작은 결혼식 문화 확산에 앞장서온 신산철 생활개혁실천협의회 사무총장은 "청탁금지법이 오히려 작은 결혼식 문화 확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다음 달 딸 결혼식을 앞둔 중앙부처 공무원 A(59)씨는 최근 딸이 예약한 5만원짜리 결혼식 식사 메뉴를 가장 비싼 7만원짜리로 바꾸었다. A씨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지인들을 미리 만나 밥을 사거나 결혼식 끝나고 감사 인사 하기가 어려워졌다"며 "그동안 신세진 사람들에게 이번에 조금이라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비용은 내가 댈 테니 더 비싼 메뉴를 대접하자'고 딸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한 방송사 직원 결혼식에 참석한 민모(55)씨는 축의금으로 10만원을 냈다. 민씨는 "청탁금지법 이후 선물도 주고받기 어려운데 경조사비만큼은 챙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치 청탁금지법이 10만원이 '적정선'이라고 정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청렴 사회를 만들고자 청탁금지법을 지난달 도입한 이후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본지 취재진이 지난 주말(15~16일) 서울 시내 결혼식장 10여 곳을 다녀본 결과, 결혼식장만큼은 마치 청탁금지법과 상관없는 '해방구'같이 느껴졌다. 다른 분야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다 움추러드는데 결혼식장만 무풍지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서울 시내 주요 5성급 호텔 측은 대부분 "내년 5월까지 주말 결혼식이 꽉 차 있다"고 밝혔다. 16일 오후 450석 규모의 5성급 H호텔 예식장은 예식이 시작되기도 전에 하객이 몰려들어 빈자리가 없었다. 식사는 숯불 구이 안심 스테이크가 메인인 8만5000원짜리 호텔 코스 요리가 나왔다. 신랑 측 하객들은 "식사비가 10만원쯤 할 테니, (축의금으로) 10만원 받아도 남는 게 없겠다"고 수군댔다. 일부 호텔 측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오히려 법 적용 대상자들로부터 '결혼식만큼은 화려하게 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기자가 전화해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라고 밝혀도 호텔들은 "일일이 경조사비를 확인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혼주와 하객 모두 "부담스러워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객들에게는 청탁금지법이 규정하는 '경조사비 10만원' 상한선이 되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결혼식 식사가 고급스러워진 데다, 법이 정하는 경조사비 상한선 10만원이 마치 '10만원을 부조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처럼 작용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 김모(31)씨는 "그동안 동료 결혼식에 갈 때 안 친하면 3만원, 친하면 5만원을 내는데, 이제 눈치가 보여 안 친하면 5만원, 친하면 10만원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홍모(28)씨는 "마치 법을 통해 10만원이 '상한'이 아니라 '적정선'을 공지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서울 H호텔 결혼식장에서는 대다수 하객이 하얀 수표나 5만원권 두 장을 봉투에 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고비용 혼례 문화'는 양가 혼주의 '체면치레' 때문에 고소득자와 중산층 할 것 없이 큰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젊은 층 사이에서부터 "작지만 우리만의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자"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축의금을 받지 않거나 예식을 간소화하는 일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런데 좋은 의미로 도입된 청탁금지법이 결혼식
조희선 성균관대 소비자가족학과 교수는 "청탁금지법이 우리 전통 문화와 사회 상규라는 이유로 결혼식 등 경조사에 대해선 관대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큰 결혼을 부추기는 지나친 하객 접대는 제한할 수 있도록 법 보완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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