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이른바 ‘누진제 전기요금 폭탄’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정부가 사실상 준조세로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전기요금의 3.7%를 일괄 징수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 중 1조원 이상이 사용처가 없어 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력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전력기금 징수액을 사상최대인 2조3038억원으로, ‘노는 돈’인 여유회수자금을 1조947억원으로 추산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005년부터 전기요금의 3.7%로 고정된 전력기금 부과율을 낮춰 누진제 개편에 사용하는 등 국민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산업부는 세부 계획도 없이 향후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에 전력기금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관련 지출계획을 줄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신재생에너지, 농어촌지원 전력기금 사용 줄인다는 산업부
8일 기획재정부가 20대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각 부처의 기금운용계획을 집대성한 ‘2017년 부담금운용종합계획서’에 따르면 내년 산업부의 전력기금 징수액은 2조3038억원으로 집계돼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 2001년 도입된 전력기금의 부과율은 2005년부터 11년 간 전기요금의 3.7%로 고정됐다. 모든 전기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걷어가기 때문에 준조세 성격이 있다. 올 여름 누진제 논란을 통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전력기금 수입에서 지출을 뺀 금액을 뜻하는 여유회수자금의 경우 내년 1조947억원으로 집계됐다. 올해 여유회수자금도 1조2287억원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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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전기료 폭탄' 논란속 전력산업 기금은 1조원 넘게 남아돌아
왜 이렇게 많은 여윳돈이 생기는 것일까. 근본적인 이유는 매년 전력사용량이 증가해 기금 수입이 늘고 있지만, 산업부가 미래 투자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기금을 꽁꽁 싸매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기금 사용실적을 보면 전력기금 총규모는 3조5986억원이었는데 이중 8976억원이 여유회수자금이었다.
세목별로 지난해 전력기금은 ▲신재생에너지보급에 4890억원 ▲발전소주변지역지원사업에 3764억원 ▲전력공급기술분야에 3485억원 ▲농어촌전기공급지원에 1756억원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에 1350억원이 각각 집행됐다.
이는 전력원가 절감과 전기안전 확보 및 보편적 전력공급 구현 등 전력기금 도입 목적과 관계가 있다.
기재부 제공
그러나 2017년 전력기금 집행 계획에서는 농어촌전기공급지원금액이 1171억원으로 2015년보다 594억원 줄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보급의 경우 4496억원으로 394억원 줄었고, 신재생에너지금융지원도 690억원이나 감소했다.
그간 누진제 개편에 난색을 보이던 산업부가 반대 논리로 신재생에너지 지원확대에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오히려 기금 사용규모는 줄인 것이다.
이에 대해 노건기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내년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금 출연은 줄어들지만, 발전사 등 산하기관에서 출연할 금액 등이 많으므로 전체 신재생에너지 투자액은 대폭 늘어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기금운용 계획은 확정된 게 아니고, 향후 변동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산업부는 매년 지출액 등 세부적인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산업부는 지난 2014년 발표한 ‘제4차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에 따라 오는 203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로 높인다는 방침을 밝혔다. 투자재원은 28조원 규모다.
그러나 연도별 투자 규모 등 세부 계획은 미흡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내년부터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해 시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력기금 여윳돈이 1조원이 넘고 누진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큰 상황에서 모자란 변명인 셈이다.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은 “정작 전력기금이 쓰여야 할 공적 지원이나 정부의 관심 없이 성장하기 어려운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에는 원자력·화력발전보다 적은 비용이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내년 ‘공공자금기금’에 1조5000억이나 예탁키로...이것도 ‘노는돈’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전력기금 사용처 중 가장 규모가 큰 분야가 ‘정부내부지출’이라는 점이다. 정부내부지출이란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자금관리기금’에 각 기금이 예탁하는 금액을 뜻한다.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은 정부가 특정부문의 육성과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원활한 자금지원을 한다거나, 정부가 직접 수행하는 사업에 수반되는 자금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설치된 기금이다.
산업부는 2015년 전력기금중 정부내부지출에 9000억원을 예탁했고, 올해도 9000억원을 예탁할 계획이다.
특히 내년에는 예탁규모를 1조5000억원으로 확 늘리기로 했다. 이는 신재생에너지 지출계획의 세 배가 넘는 액수다.
공자기금을 관리하는 기재부 관계자는 “1조5000억원 예탁은 산업부가 제출한 계획”이라며 “한마디로 전력기금에 돈은 쌓이는데 할 사업은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전력기금 여윳돈이 이미 1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기금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고, 사실상 노는 돈이 2조5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기금을 도입 목적에 따라 사용해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공익사업에도 쓸 수 있도록 ‘선’을 대놓기 위한 것”이라며 “공자기금의 특별한 사용처가 없다면 은행에 예금하듯 넣어두고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김창석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현행 전력기금은 3.7% 부과율로 굳어져 11년째 이어져 오다보니 남는 돈이 많아졌다”며 “올여름 누진제 논란을 통해 사실상의 ‘조세저항’이 발생했기 때문에 건전성 유지가 맞느냐, 아니면 국민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게 맞느냐는 논리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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