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료·국제

마이너스금리 '역풍' 현실화…"소비 안하고 금괴 산다"

학운 2016. 8. 10. 08:55

[일본·독일·스위스 등 가계저축률 상승…전문가들 "정책 자체보다 잘못된 신호가 원인"]
부진한 경기성장세에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은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마이너스 금리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소비를 더 위축하고 사람들은 저축을 늘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인용해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하고 있는 일본과 독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비회원국인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등에서 저축률이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유로존 비회원 3개국의 저축률은 데이터를 수집한 1995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저축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독일은 2015년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률이 9.7%까지 올랐다. 201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OECD는 이 비율이 올해 10.4%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중앙은행(ECB)는 2014년 6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다.

OECD는 지난 1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일본의 가계저축률도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은행(BOJ)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일본의 가계저축률은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1.3% 올랐다. 1분기만 떼어놓고 보면 비금융기관, 즉 가계의 현금보유와 저축률은 전년대비 8.4% 급등했다. 1990년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이다. 반면 소비의 경우 지난 2월 1.2% 상승한 이후 4개월 연속 하락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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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각국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저축률 전망. 위에서부터 스위스, 스웨덴, 독일, 덴마크, 미국, 일본. /사진=WSJ=OECD

'마이너스 역풍'이 불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각국 금융당국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생소한 마이너스 금리라는 정책을 사용하면 사람들은 경기전망에 불안을 느끼거나 통화당국이 이를 충분히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투심이 위축되면 소비가 늘어나기보다는 저축 성향이 커진다.

스웨덴 SEB은행의 칼 해머 선임 외환 투자전략가는 "소비자들에게 전해지는 신호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라는 것"이라며 "마이너스 금리는 위기 때 쓰는 처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라스 보흐만(63)씨는 "마이너스 금리라는 개념 자체가 이상하다"며 "소비하기보다는 퇴직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저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냥 계속 은행에 저축을 할 것이다. 아니면 집안 카펫 아래에 돈을 숨길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소도시 코르셴브로이히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하이카 호프만(54)씨는 ECB가 약 2년 전에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을 때 이를 '광기'로 생각하고 저축률을 높이면서 금괴를 사모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금과 금괴는 호프만의 집안 금고에 보관돼 있다.

마이너스 금리가 소비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통화당국이 중앙은행에 예금을 예치하는 상업은행들에게 보관료를 물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업은행들은 이 비용을 은행 이자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전가한다. 안그래도 낮은 이자율에 울상이던 사람들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반감이 드는 이유다.

그러나 사람들의 저축 성향이 강해진 건 마이너스 금리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저유가에 따라 낮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이 저축을 할 수 있는 여윳돈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마이너스 금리의 정책적 효과를 분석하려면 저축자보다 소비성향이 더 강한 대출자들을 중심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마이너스 금리의 정책효과를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주장도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마이너스 금리 효과가 한꺼번에 나타나지 않겠지만 점차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브느와 끄레 ECB 이사회 위원은 지난 7월 "마이너스 금리를 포함한 정책들이 인플레이션을 중기 목표치로 높이고 경제의 전반적인 리스크를 낮추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WSJ은 각 통화당국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하든 선회를 하든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과 유럽의 경우 이미 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가 충분치 않아서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처방을 도입한 것인데 이마저도 작동하지 않으면 통화당국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없다.

마일스 킴블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당국들이 현재 마이너스 금리 수준보다 더 큰폭으로 금리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마이너스 금리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면 이건 통화당국이 정책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정책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마이너스 금리는 정상적인 정책수단이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