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수출 세계 6위, GDP 규모 세계 11위 등 경제규모나 지표로 보면 그렇다. 이미 20년 전 선진국 클럽으로 분류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횡행하는 시대에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영역에서 과연 선진국일까라는 물음에 우리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는 창간 15주년을 맞이해 지난 20년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앞으로 20년 동안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모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기로 했다.
[[OECD20년 대한민국, 선진국의 길]<5>-②일본 반대쪽으로 뛰어야 '진정한 선진국'된다]
#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요즘 밤잠을 설친다. 경제지표는 점차 개선되는 모양새지만, 대·내외 경제 환경이 갈수록 불확실해져서다. 경제정책은 방향성이 중요한데,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 등으로 세계 경제는 ‘시계제로’ 상태다. 우리나라가 이런 혼돈의 터널을 벗어나, 일본처럼 되지 않게 하는 게 최 차관이 설정한 정책 목표다.
그는 최근 한 강연에서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일본은 버블이 꺼진 이후 1995년에 생산가능인구가 정점이었다가 그 뒤로 점점 떨어졌는데, 일본이 이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요즘 “왜 우리나라는 성장이 멈췄을까?”를 고민한다. 분명 우리 정부와 국민, 기업 등 경제주체는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데 왜 제자리 걸음만 하는지가 의문이다. 그는 “성장판을 다시 열기 위해선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형 일본화...선진국의 최대 걸림돌
전·현직 고위 관료를 비롯해 많은 전문가들이 한국의 일본화를 우려한다. 우물쭈물하다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미 각종 지표는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 조동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지난해 KDI에서 발간한 ‘우리 경제의 역동성: 일본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란 연구보고서를 보면 △고령화 △경제성장률(명목) △수출산업 △물가 △재정악화 등이 20년 시차를 두고 일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1980년대 10% 안팎이었던 일본의 명목성장률은 10년 후 5%대 아래로 추락한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거쳐 현재 0%대다. 정확히 20년 격차를 두고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따라가고 있다. 이 추이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지난해 기준 4.9%였던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은 2020년 0%대로 내려간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성장률(2.6%)은 20년 전 일본의 성장률과 똑같다.
일본보다 더 안 좋은 것도 많다. 한국의 가계부채비율은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진 시점보다 더 높다. 자영업자 비율 역시 일본을 능가한다. 즉 한국의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넘겨 전체 GDP(약 1500조원)에 곧 육박한다. 자영업 종사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30%에 달한다.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진 1990년대 가계부채는 GDP의 75% 수준이었고, 자영업자 비율도 12% 정도였다.
고령화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10년 뒤인 2026년 국민 5명 당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일본이 36년 걸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반면, 한국은 10년이나 앞당긴 26년 만에 초고령 사회에 도달하게 되는 셈이다. 조 위원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고령화와 생산성 정체에서 비롯됐다”며 “일본처럼 안되게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실패가 주는 교훈
1980년대까지 일본의 성공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이 이런 과거 성공방식에 매몰돼 변화를 무시했고, 혁신에 대한 의지도 사그라든 탓에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은 “일본이 1990년대 이후 성장을 멈춘 근본적인 이유는 추격 단계가 끝났는데도 새로운 기술을 모방하거나 수입하는 체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창의적인 인재육성과 새로운 기술 개발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과감한 구조조정에 실패한 것 역시 일본이 장기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이유로 꼽힌다.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해 은행의 자본분배 기능이 왜곡되고 좀비기업들이 경제의 역동성을 갉아 먹었다는 얘기다. 여기다 양극화 등 사회적 문제도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
홍성국 미래에셋대우 사장은 “일본은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혁신의 한계가 왔고, 성장이 정체되고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면서 사회가 활력을 잃었다”며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구조개혁에 실패한 일본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을 보고, 무조건 반대로 뛰어라”
전문가들은 일본이 걸었던 길을 피할 수 있는 정책 방향을 설정, 우리만의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선 일본처럼 안 하면 된다”며 “일본은 인구가 감소해도 이민정책을 거부하면서 저성장과 양극화에 빠졌는데, 우리는 양질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등 인구감소에 적극 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갖고 있고, 일본은 갖고 있지 않은 돌파구가 바로 통일”이라며 “장기적으로 통일을 우리나라의 저성장 탈출구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이 아닌 생존전략의 관점에서 통일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규제 완화, 복지 구조조정 등의 문제도 선진국의 조건으로 제기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기업 등에게 과감하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 놓인 과잉 규제를 없애 성장판이 열리도록 해야 일본처럼 안된다”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 패러다임을 바꿔야 우리나라가 산다”며 “단순히 나눠주는 복지에서 기회를 보장해주는 포용적 복지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태용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가 가장 강점이 있는 IT와 디지털 기술을 신산업에 접목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본은 실패했지만, 기존 산업에서 한발짝 물러나 장기성장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