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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부터 K까지…알파벳으로 '고객 그물망' 치는 휴대폰 제조사들

학운 2016. 7. 6. 21:02

반으로 접는 폴더형 휴대폰이나 위로 밀어 올리는 슬라이드형 휴대폰이 주를 이루던 시절에는 같은 제조사 제품들이라도 외관 디자인은 제각기 다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전체적으로 비슷한 디자인 틀 안에서 성능을 강화하거나 덜어내는 식으로 한 제품 시리즈 안에서도 다양한 가격대의 모델을 만들어내고 있다.

업체들은 엇비슷한 디자인의 고가·중가·저가 스마트폰에 각기 다른 알파벳을 붙여 하나의 시리즈를 탄생시킨다. 거의 모든 고객군을 대상으로 촘촘한 그물망을 쳐 다른 브랜드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형 제조사들의 이 같은 전략이 창의적인 스마트폰 디자인의 등장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삼성 ‘갤럭시S7’의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 / 사진=전준범 기자
삼성 ‘갤럭시S7’의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 / 사진=전준범 기자

◆ S·A·J 시리즈로 모든 고객군 공략…“유사차별화”

오는 7일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전자 (1,421,000원▼ 48,000 -3.27%)는 2014년 1분기 이후 9분기 만에 8조원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적 호조를 주도한 건 휴대폰을 총괄하는 IT·모바일(IM) 부문이다. 삼성전자 IM 부문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4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대표 브랜드인 ‘갤럭시’로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진출국에서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플래그십(기업의 핵심 역량을 담은 주력 기종) 라인업인 갤럭시S·노트 시리즈와 중저가폰 라인업인 갤럭시A·J 시리즈로 프리미엄폰 시장과 보급폰 시장을 동시에 공략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난 2분기의 경우 갤럭시S7 시리즈가 전세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갤럭시 시리즈에 속하는 대부분의 모델은 언뜻 보면 디자인이 다 비슷하게 느껴진다. 마치 메르세데스 벤츠의 C·E·S클래스나 BMW의 3·5·7 시리즈가 가격은 천차만별이라도 디자인에서 만큼은 통일성을 갖는 것과 같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차이가 나는 ‘유사차별화’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삼성전자의 2016년형 ‘갤럭시A’ 시리즈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2016년형 ‘갤럭시A’ 시리즈 / 삼성전자 제공

이재광 한국산업기술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기업의 브랭딩 전략이 부실해 제품을 만들 때마다 디자인이나 판매 컨셉이 제각기 따로 노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요즘은 하나의 대표 브랜드를 구축해 브랜딩 비용을 절약한 다음 이 안에서 가격·특징 등 서브 옵션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갤럭시의 경우 S 시리즈는 고가의 프리미엄 모델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는다. 경쟁 제품도 애플의 아이폰 시리즈다. 반대로 갤럭시J는 10만~20만원대의 저가폰 사용자들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됐다. 갤럭시A 시리즈는 S와 J의 중간대 소비자를 잡기 위해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세 시리즈 모두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이 교수는 “특정 산업이 성숙단계에 접어들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틈새를 노려야 돈을 벌 수 있다”며 “공들여 완성한 대표 브랜드 안에 다양한 유사차별화 제품을 만들어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LG ‘G5’의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 / 사진=전준범 기자
LG ‘G5’의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모습. / 사진=전준범 기자

◆ “골고루 원하는 이는 G, 한 가지 기능만 원하는 이는 X”

전략 스마트폰 G4와 V10, G5의 연이은 부진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LG전자 (55,100원▼ 800 -1.43%)도 다양한 고객군을 ‘LG 가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스마트폰 라인업을 G·V·K·X 등 4개로 정리했다. ‘갤럭시’처럼 전체를 관통하는 브랜드명은 없지만, 4개의 알파벳 시리즈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 추락한 위상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이다. G·V·K·X 시리즈 역시 전반적으로 디자인이 비슷하다.

G와 V 시리즈는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프리미엄 제품군이다. LG전자는 상반기에는 G 시리즈, 하반기에는 V 시리즈를 출시하는 방식으로 1년 판매 주기를 완성했다. LG전자 관계자는 “G 시리즈는 프리미엄 성능을 두루 갖춘 ‘세단’ 같은 라인업이고, 듀얼 카메라·이형(異形) 디스플레이 등 독특한 기능이 가미된 V 시리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같은 제품군”이라고 설명했다.

K와 X 시리즈의 경우 LG전자가 전세계 중저가폰 시장에 선보이기 위해 만든 보급형 제품군이다. 이중 최저가 라인업인 K 시리즈는 실속을 중요시하는 소비자들이 주로 찾는다. X 시리즈는 1~2개의 고급 기능만 찾는 고객군을 위해 개발됐다. 예컨대 X캠은 카메라 기능에만 관심이 많은 사용자를 위한 제품이다. X캠 후면에는 2개의 카메라가 장착됐다. X파워는 배터리 용량에 민감한 이들을 위한 보급폰이다. 여기에는 4100밀리암페어아워(mAh) 용량의 배터리가 달려있다.

 (왼쪽부터 2개씩) X5, X파워, X스킨 / LG전자 제공
(왼쪽부터 2개씩) X5, X파워, X스킨 / LG전자 제공

일각에서는 휴대폰 제조사들의 이 같은 유사차별화 전략이 창의적인 스마트폰 디자인의 등장을 막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삼성전자, 애플, LG전자와 같은 대형 제조사가 대체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어 거의 모든 회사의 제품이 비슷해져 가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휴대폰 제조업계의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제조사가 참신한 디자인의 스마트폰을 개발해도 대형 제조사가 막강한 자금력과 유통망을 앞세우면 시장에서는 늘 봐온 느낌의 제품만 깔리게 된다”면서 “스마트폰을 찾는 소비자들이 좀 더 다채로운 스타일의 제품을 만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