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고소장 접수 거부...직무상 의무 위반
경찰의 고소장 접수 거부와 관련된 일선 변호사들의 반감과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수사 인력을 합리적인 수준까지 늘리거나 경찰 접수 사건에서 각하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 국민 권익보호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 고소장 제출하면 '임시접수' 후 면담... "편법" vs "정당 절차"
현행법상 경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민원인의 고소·고발장 접수를 거부할 수 없다. 경찰청 범죄수사규칙 제50조는 ▲고소·고발 사실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을 때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 ▲피의자의 사망·법인격 소멸 ▲권한 없는 자의 고소 등 고소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고소장을 반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고소장이 접수되면 경찰은 담당 수사관을 배정하고 조사 및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고소를 접수하기 전에 수사관과 고소인이 면담을 진행한 뒤 정식으로 사건을 접수할지 말지 결정하는 '임시접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시접수 상태에서는 정식 사건번호가 부여되지 않고, 담당 수사관도 지정되지 않는다.
이같은 임시접수 제도에 대해서는 "옥석을 가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견해와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를 야기하는 편법"이라는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린다.
한 경찰 관계자는 "터무니없는 사유로 고소를 하거나, 민사사건을 형사사건화 시켜 상대방을 압박하려는 용도로 활용하려고 하는 등 악성 민원인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임시접수 없이) 모든 사건을 접수해 세세하게 살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다른 경찰관도 "무분별하게 고소장이 접수되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이 피의자 신분이 되어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며 "인권보호 차원에서 임시접수 제도를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변호사도 "임시접수 제도는 어렵고, 힘든 사건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법률대리인 조차 선임하지 못하는 힘없는 서민들은 경찰의 '안 된다'는 말 한마디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지난 20일 고소장을 내려고 한 민원인에게 경찰이 "이건 형사사건이 아니라 민사사건"이라며 반려한 것은 위법한 직무집행에 해당하므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려 변호사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2019다29790).
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경찰관은) 고소장을 접수한 후 심사해 이를 처리할 의무가 있는데, 고의 또는 중과실로 기본적인 고소장 접수 절차도 밟지 않고 이를 거부하는 것은 경찰공무원으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공무원의 성실의무, 친절·공정의무는 단순한 도덕상의 의무가 아니라 법적 의무"라고 판시했다.
■ 근본적 개선방안 없나... "인력충원, 각하제도 도입 필요"
한편 경찰의 고소장 접수 지연·반려 현상의 배경에는 만성적인 수사인력 부족과 재량권 부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이론적으로 경찰은 요건만 맞는다면 100건이든 1천건이든 고소장을 접수하고 바로 수사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오히려 경찰 수사가 꼭 필요한 사건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전반적인 경찰의 수사력 약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인력 보충 등 경찰의 수사여건과 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한편 민원인이 경찰의 반려 처분에 대해 납득할 수 있도록 '각하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출처 : 법률방송뉴스(http://www.lt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