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5만원 줄게 따라와"…아이 유혹했는데 무죄?

학운 2019. 9. 10. 06:37

[시간·장소 등 당시 정황 고려 1심서 무죄 판결…다른 정황 고려해 '유죄' 선고된 경우도 있어]

/사진=이미지투데이초등학생 3명에게 "5만원을 줄테니 따라와라"고 유인했다가 미수에 그친 30대에게 무죄가 선고돼 눈길을 끕니다. 검찰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1심 법원, "시간·장소 등 당시 정황 고려해 무죄 선고"

지난 6월 24일, 한 아파트 편의점 앞에서 A씨(33)는 초등학생 B군 등 3명에게 지갑을 보여주며 “5만원을 줄테니 따라와라”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A씨는 "내가 너희 학교 교장선생님 동생이다"라고 말하며 난데없이 바닥에 있던 B군 가방을 들고 도망치는데요. 이렇게 하면 학생들이 쫓아올 것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A씨의 이런 범행은 주변을 지나가던 B군의 부모가 발견하면서 미수에 그쳤는데요.

A씨는 자신이 한 행동 사실관계는 인정했다고 합니다. A씨는 그러나 "단지 장난칠 생각이었다"며 범행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는데요.

미성년자 유인죄는 미성년자를 속이거나 유혹해 현재의 보호상태로부터 이탈하게 해 자신 또는 제3자의 지배하에 두는 범죄입니다. 여기서 유혹하는 내용이 꼭 거짓말이 아니어도 죄가 성립될 수 있습니다. 감언이설로 미성년자를 현혹시켜 자신을 따라오게 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되는데요.

이 죄의 처벌 규정에는 벌금형이 없고,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무거운 범죄입니다. 또 미수에 그쳐도 처벌받는데요. 단 모든 형법상의 범죄가 그렇듯 범행의 고의가 없었다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서울중앙지법도 A씨 행동의 '범행 시각·장소 및 다른 정황' 등을 고려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구체적인 상황은 이랬습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는 환한 대낮이었습니다. 그 장소도 대로변에 있는 편의점 앞이었고요. 주변에는 폐쇄회로 TV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A씨는 해당 아파트 거주자로 B군의 가방을 들고 뛰어간 곳도 다름아닌 아파트 정문 앞 경비실 쪽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다른 일행도 가방을 들고 도망가는 A씨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피해자 학생 중 한 명도 "장난치는 느낌이 들었고 전혀 무서운 느낌은 아니었다"고 진술했습니다.

1심 법원은 이를 종합해 "A씨가 학생들을 속이거나 유혹해 자신의 지배에 두려했다고 인정하기엔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다만 "A의 언행으로 학생들이 겁을 먹을 수 있고,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거나 전해들은 부모가 겪었을 걱정과 두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돈 줄게" 유혹…다른 정황 고려해 '유죄' 선고

법원은 각 사건마다 사실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유·무죄를 판결합니다. 단순히 어떤 행위만 했다고 무조건 유·무죄를 기계적으로 판단하진 않는데요.

똑같이 A씨처럼 "돈을 준다"는 식으로 초등학생을 유혹했다가 이번에는 유죄가 선고된 판례도 있습니다.

2017년 8월26일 오후 8시25분. 술에 취한 C씨는 은행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서 있던 D양에게 다가갑니다. C씨는 자신의 지갑을 보여주며 "돈을 줄테니 같이 가자"고 말하지만 D양은 이를 거절했는데요.

그러자 갑자기 돌변한 C씨는 "쟤를 죽어야겠다"며 주변 노점상에 들어가 칼을 달라고 합니다, 다행히 노점상 주인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D양을 데리고 인근 마트로 피신했는데요. C씨는 계속 D양 뒤를 쫓으며 "저런 것들은 다 죽여버려야 한다"며 협박합니다.

이에 울산지방법원은 "C씨의 행위는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지적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당시 알코올중독자였던 C씨에게 보호관찰과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D양이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며 D양 측과 합의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해 판결을 내렸는데요. 그러나 C씨가 동일 범죄 전력이 없고, 만취된 상태에서 다소 우발적으로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