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에 계좌 빌려줬다 임의 인출, 횡령죄?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계좌를 빌려준 사람이 자신의 계좌에 들어 있는 현금을 인출했다고 하더라도 사기죄 외에 따로 횡령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
A씨와 B씨는 유흥비 마련 등을 위해 2016년 3월부터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들의 명의로 된 은행계좌를 빌려주고 돈을 벌었다. 그러다 같은 해 5월 A씨 명의의 계좌로 150만원이 입금됐다. A씨와 B씨는 계좌를 확인하고 임의로 이 금액을 인출, 75만원씩 나눠가졌다가 검찰에 기소됐다.
보이스피싱 범죄와 별개로 이들이 계좌에 들어온 금액을 임의로 인출한 행위가 금액을 송금한 피해자에 대해 횡령죄가 성립하는지가 문제였다.
대법원에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계좌를 빌려주고 입금된 피해자의 돈을 임의로 인출해 사용한 A씨와 B씨에 대해 따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2017도3045 판결)
대법원 재판부는 “보이스피싱을 저지른 범인이 피해자를 속여 피해자의 돈을 사기에 이용된 계좌로 돈을 이체 받았다면 범죄가 완료된 것”이라며 “범인이 피해자의 돈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해 피해자와 사이에 어떤 위탁 또는 신임 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범인들이 피해자의 돈을 보관하는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범인들이 사기에 이용된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미 성립한 사기 범행의 실행행위에 지나지 않아 새로운 법익을 침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인출 행위는 사기 피해자에 대해 따로 횡령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봤다.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그 반환을 거부함으로써 성립하는 죄를 말한다. 형법 제355조에 규정돼 있다. 횡령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여야 하고, 보관은 위탁 임무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횡령죄에서는 재물의 주인과 보관하는 사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그런데 보이스피싱 범죄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이런 관계라고 볼 수 있을까. 피해자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계좌의 주인에게 믿고 돈을 맡겼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대법원도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고 A씨와 B씨의 횡령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