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형사판결

대법 “사장이 마음대로 발행한 약속어음..유통돼야 배임"

학운 2017. 7. 20. 23:30

대표이사가 직무상 권한을 벗어나 임의로 회사 명의로 발행한 효력없는 ‘약속어음’이 제3자에게 유통되지 않았다면 배임죄가 아닌 배임미수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는 무효 약속어음이 실제 유통되지 않았다 해도 재산피해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다는 이유로 배임죄를 인정했던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신 대법관)는 특경법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모(57)씨에 대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사와 B사의 대표를 겸임하고 있던 김씨는 A사가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대출은행이 연대보증과 약속어음 발행을 요구하자 B사 명의로 29억9000만원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지급했다. 그러나 사건 약속어음은 제3자에게 유통되진 않았다.

검찰은 김씨가 A사를 위해 B사 명의를 빌려 발행한 약속어음이 제3자에게 유통되진 않았지만 이로 인해 B사가 재산상 피해 위험을 짊어지게 됐다며 특경법상 배임죄로 기소했다.

1심은 김씨의 행위를 유죄로 판단,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고 항소심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했다. 대표가 개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대표권을 남용해 발행한 약속어음은 제3자에게 유통되지 않았다면 효력이 없기 때문에 배임죄를 적용하긴 무리라고 봤다.

대법원은 “약속어음 발행행위가 무효이고 약속어음이 제3자에게 유통되지 않았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산상 손실 발생 위험성이 초래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이 경우 배임죄가 아니라 배임미수죄로만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그간 약속어음을 제외한 다른 대표권 남용행위에 대해서는 법률상 무효인 경우 실제 손해가 발생해야 배임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약속어음에 대해서는 법률상 무효인 경우도 재산 피해 발생 위험성이 초래됐다고 보고 배임죄를 인정해왔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전 판례에 따르면 약속어음 발행 사안에서 배임죄가 성립이 너무 앞당겨지는 문제가 있었다”며 “이번 판결은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며 판례를 변경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