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원 민사판결에 군대까지 동원한다고?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4] 1. 여기 어린 딸자식을 버린 비정한 아버지가 있다.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며 어렵게 딸을 키웠고, 딸은 어른이 되어 한 번도 자신을 찾지 않았던 아버지를 찾아간다. 이때도 재혼한 집을 깰 일 있느냐며 쫓아낸 비정한 아버지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사춘기의 불안함을 감내하며 성장통을 앓던 어느 날, 대학 입시를 하루 앞두고 있던 날…딸은 아버지가 오죽 절실했을까?
성인이 되어 어쨌든 자신의 뿌리를 보고 싶어 어렵게 찾아간 자신을 매몰차게 쫓아낸 아버지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 딸은 아버지를 상대로 과거의 양육비 청구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물론 원고는 딸의 어머니가 된다. 소송 준비나 선임료 지급, 소송비용은 딸이 냈지만…).
소송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는 소송 과정에서도 돈을 줄이려고 사업 경영이 안돼 어렵다느니 별 주장을 다했고 인터넷을 검색해 이때 당시 골프회원권을 아버지가 운영하는 법인 명의로 다수 구입한 사실을 밝혀내 이런 주장을 깨고는 했다. 결국 많은 우여곡절과 고비를 넘겨 결국에는 꽤 많은 액수의 양육비를 인정받았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선고되자 이 딸은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더란다.
많은 눈물의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었다.
평생 살면서, 딸은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무엇보다 많은 무력감에 시달려 왔단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어 사는 게 지옥같았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옥죄었던 무력감, 자신의 첫 출발점으로부터 부정당했다는 느낌이 이 판결을 통해 씻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판결이 이분께는 자신감과 상실됐던 무언가를 회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권리가 판결에 의해 제대로 확인돼 실현될 수 있을 때 법은 심리적 치유 역할을 하기도 하는가 보다.
2. 그런데 판결이 얼마나 힘이 세냐고?
겨우 2000만~3000만원 정도 지급하라는 민사판결 하나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가령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민사판결이 확정됐다고 하자. 이 판결문에 집행문을 부여받으면 집행력이 발생한다.
그리고 민사집행법 제5조(집행관의 강제력 사용)
① 집행관은 집행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채무자의 주거·창고 그밖의 장소를 수색하고, 잠근 문과 기구를 여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경우에 저항을 받으면 집행관은 경찰 또는 국군의 원조를 요청할 수 있다.
③제2항의 국군의 원조는 법원에 신청하여야 하며, 법원이 국군의 원조를 요청하는 절차는 대법원규칙으로 정한다.
여차하면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는 게 1000만원짜리 민사판결문의 힘이다.
변호사도 때때로 무력감에 시달린다. 때때로 법의 이름으로 정의가 능멸될 때 극심한 무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또 때때로 정의가 실현되고 거기에 경찰이나 군대까지 동원할 수 있는 실제적인 힘까지 부여될 때 "내가 그래도 괜찮은 일을 하고 있어"라는 자신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