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물 찾아주고 사례금은?…'보상금청구권'이 답이다
#. 택시기사 지모씨(61)는 허탈한 표정으로 손에 쥔 박카스병을 쳐다봤다. 휴대전화를 두고 내린 승객에게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지씨는 이날 일을 공치다시피 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2시간을 달려간 지씨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소유자의 말에 2시간을 하릴없이 기다렸다. 반나절 만에 만난 분실자가 사례라며 내민 것은 박카스 한 병. 법인택시기사 지씨는 자신의 지갑을 열어 회사에 사납금을 내야 했다.
'선행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지만 희생을 자처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지씨가 자신의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을 방법은 없을까. 정답은 '받을 수 있다'이다.
현행 유실물법 제4조는 '물건의 반환을 받는 자는 물건 가액의 100분의 5 내지 100분의 20의 범위 내에서 보상금을 습득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지씨가 되돌려준 휴대폰은 당시 시가 90만원 상당의 최신 휴대전화. 법에 의하면 최하 4만5000원에서 최대 18만원을 보상금으로 청구할 수 있다.
지씨는 "이런 법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면서도 "그런 법이 있다고 해도 보상금을 달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유실물 '보상금 청구권'…아는 사람 드물고 알아도 "주기 싫어"
"드려야겠지만 솔직히 아까워요. 고맙긴 해도 원래 내 물건인데…"
지난해 7월 휴대전화를 분실했다 되찾은 직장인 박모씨(28·여)는 물건을 찾아준 사람이 보상금을 요구한다면 주겠느냐는 질문에 "기분 좋게 주진 못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보상금을 주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생돈이 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씨처럼 유실물을 찾아주고도 법을 몰라 기분만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시가 10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습득해 주인에게 돌려준 문국현씨(29)는 아무런 사례비도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만 남기고 물건을 날름 가져가는 주인을 보며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며 "시간만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유실물법에서 보상금청구권을 보장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알았다면 요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보상금 청구권리 알리고 있어"…일선 경찰서 '갸우뚱'
전문가들은 "유실물법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보상금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등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며 "경찰서와 파출소 등 공공기관이 유실물을 접수할 때 보상금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자세히 알려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도 유실물을 접수하거나 주인에게 반환할 때 습득자와 분실자에게 보상금 청구권을 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유실물을 가져온 습득자에게 유실물 처리절차와 보상금 청구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상금청구권을 습득자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파출소나 경찰서는 드물었다.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A경찰은 "경찰이 보상금 청구권을 설명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여태껏 습득자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경찰이 유실물법 규정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의 한 경찰서 민원실에서 유실물을 접수하던 경찰 관계자는 "유실물법이라는 게 있는 것은 알았지만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이어 "습득자가 오면 성명과 연락처 등은 기재하지만 보상금청구권을 알려 준 적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 "공공기관이 보상금청구권 적극 알려야 사회갈등 줄일 수 있어"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이 국민에게 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국민준법 정신을 높이고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실물을 주인에게 돌려줄 때 어느 정도 사례를 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상규지만 누구나 공유하는 관념은 아니다"라며 "사례를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내 물건 가져가는데 사례금이 왜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선행을 하고도 감정이 상하거나 갈등이 생기면 '분실물을 적극적으로 찾아주자'는 의식까지 줄어들 수 있다"며 "오히려 유실물법과 같은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합리적인 관행을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합리적인 규칙'을 국민의식에 안착시키기 위해선 먼저 "공공기관이 담당 직원에게 유실물법에 대한 교육을 충분히 하고 유실물 습득신고가 있으면 이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를 당사자에게 명확히 알려 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